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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원칼럼_1] 타다아사나(산 자세)와 영화 ‘와일드(Wild, 2014)’
[류승원칼럼_1] 타다아사나(산 자세)와 영화 ‘와일드(Wild, 2014)’
  • 유승민
  • 승인 2021.06.15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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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 질문의 배경에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았고 선택할 수도 없지만, 지금껏 감내하거 나 감사하고 있는 이 생(生)’에 대한 평가나 신념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사춘기 시절 그냥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주 현실을 부정했고 틈만나면 또래 관계에 집착하며 영화 속 세상으로 도피했다. 한때는 몇몇 친구들과 영화를 만들겠다고 며칠 밤을 설쳐대기도 했으나, 이마저도 돌이켜보면 어른들 몰래 술과 담배에 흠뻑 취하며 느꼈던 죄책감과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 시간에 대한 허망함을 덜어내기 위한 얕은 술수에 불과했다.

 희망찬 밝은 내일을 기대하기에 내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늘 거대한 산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 럼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아닌 척, 모른 척해도 혼자 있을 때면 터져 나오는 나의 한숨과 절망은 그 산의 그림자만큼 깊고 어두웠다. 그로 인해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뭔가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위험하고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 때문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음은 물론이고, 소중한 인연들도 하나둘 사라졌다. 결국 나는 처참히 무너졌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며 좌절했다. 그렇게 나는 삶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며 죽음과 가까워졌는데... 어느 날 문득, 수년 전 해외 체류 중에 지인을 따라 인도 선생님에게 잠시 배웠던 요가가 떠올랐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하던 곳 근처 요가원을 찾았고 일반 과정을 다니다 얼마 뒤 지도자 과정으로 바꿔 등록했다. 요가에 대해 지식도 경험도 미천했지만, 누군가를 가르칠 것처럼 책임감을 갖고 배우지 않는다면 조금도 나아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정식으로 요가를 배우고 나서야 무너진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는데, 특히 과정 초반 타다아사나(산 자세)를 배우며 태어나 처음으로 바로 설 수 있었던 것이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나는 수행 중에 타다아사나는 빼놓지 않는다. 처음에는 자세를 잡기 위해 애를 쓰게 되지만 안정화되면 흔들림 없이 서 있는 나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양발과 무릎, 허벅지 사이에 틈이 없을 정도로 양다리를 붙이고- 양발바닥을 고르게 지면에 고정하고- 턱을 살짝 당기며 척추를 바로 세우고- 양팔을 어깨로부터 편안하게 내린 뒤 손가락을 모두 붙인 채 손끝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안으로 조이며 깊은 호흡으로 평온함을 유지하기. 타다는 산을 의미한다. 산과 같이 우직하고 고요한 상태로 머무르는 것이기에, 매 순간 움직이려는 요소와 그 수준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척추를 중심으로 계속 균형을 잡다 보면 온몸에 땀이 흐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간마저 지나면 땀은 말라버리고 작은 바람에도 모든 신경이 하나하나 대응한다. 그 내밀한 감각에 옅은 미소가 공간 전체로 퍼진다.

 햇수로 8년, 요가를 만난 후 타다아사나는 내게 세상과 직면할 수 있는 힘과 자신을 용서하며 이전보다 더 굳건해질 수 있는 지혜, 어떤 상황에서도 압도되지 않으며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선사했다. 지면에 닿는 발바닥으로 뿌리를 내리게 하여 배가 닻을 내리 듯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지 않게 해주었고, 목표를 정했다면 어디로 돛을 펼치며 항해를 해나갈지 결정할 수 있도록 넓고 높은 시야를 갖게 하였다.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산의 고요함 역시 그 안에 존재하는 많은 생명의 역동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평온함 속에서도 바로 서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자문자답하게 하였다.

 

 여기, 필자의 이런 상황과 닮은 한 편의 영화가 있다. 2014년 미국에서 제작되어 국내에는 2015년에 개봉한 와일드. 이 영화는 한때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던 동명의 책과 작가 셰릴 스트레이드의 실제 삶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이어진 가난과 폭력으로 만신창이였던 주인공은 유일한 삶의 희망이었던 엄마마저 갑작스레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마약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며 영혼마저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다름없는 시간 속에서 주인공은 우연히 서점에서 PCT(The Pacific Crest Trail, 미국 서부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약 4,285km 산악코스)와 관한 책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도 매년 약 8,000명이 도전해 평균 150일에 걸쳐 100명 정도만이 완주한다는 이 코스를 아무런 아웃도어 경험이 없는 26살의 여자 혼자서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주인공은 지체없이 결정하고 짐을 꾸린다. 사막과 화산 지대, 눈 덮인 고산 지대와 거친 강을 거쳐야 하다 보니 그녀는 준비할 것이 많았고 자신의 몸보다 큰 배낭을 메려다 그 배낭에 짓눌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세상 끝에 와 있는 자신에게 돌아갈 곳이 없음을 받아들이고, 하늘에 있을 엄마와 가까워지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이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과 동물, 자연의 위협을 뚫고 야생에서 지낸 지 94일째가 되던 날. 그녀는 종착지에 다다른다.

 

 영화 초반, 산은 주인공이 감당해야 할 정복이나 극복의 대상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주인공 은 나 자신이 그 산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며 적응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불필요한 짐도 줄이고, 과거를 회상하며 그동안 정돈할 수 없었던 불편하고 두려웠던 기억과 감정들도 쏟아낸다. 어느덧 치유의 길을 걷게 된 그녀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코스만큼 성장하고 있었다, 변화무쌍한 날씨와 혹독한 지형도 그녀에게는 어려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영화 끝에서 주인 공은 마치 스스로가 산이 된 것처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정으로 가깝고, 진정으로 현재에 머물며, 진정으로 내 것인 인생. (이처럼) 흘러가게 둔 인생은... 얼마나 야생적이었던가.’ 

 

 2019년 5월 19일, 필자는 영화 속 주인공이 완주한 거리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지만 당시 논 스톱으로는 생애 최장 거리를 달렸다. 기존 기록은 일반(로드) 마라톤 풀코스(42.195km)였는데, 이보다 약 10km를 더 달렸다. 그것도 대부분의 구간이 산악 지형이었으니 체감거리는 100km 같았다. 두 기록 모두 나름 자랑스러웠으나, 곰곰이 돌아보니 수백 수천 명이 동일한 코스를 달리는 안전한 대회에서 훌륭한 러닝메이트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완주한 것이기에 마음 한 편으로는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있었다. 그래서 홀로서기에 대한 의지가 계속 생겼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얼마 전인 5월 22일, 66.5km를 12시간 정도 혼자서 걷고 뛰는 것으로 일단 만족했다. 숫자들을 나열했지만 사실 거리나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태양과 달의 변화를 느낄 정도의 시간 속에서 혼자일 수 있는가가 그보다 중요했는데 다행히 원하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걷고 뛰는 과정에서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고, 또 정리할 수 있었다.

 흐뭇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와 욕조에 몸을 담근 뒤, 마무리 샤워를 하려고 일어서는데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제야 누군가에게 온몸을 얻어맞은 듯 갖가지 통증들이 밀려왔다. 하지만 분명 시간이 지나면 이 통증은 사라지고, 통증을 통해 얻은 결과는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어둡고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과거도, 잡힐 것 같지 않은 미래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무모하고 무의미하게 여겨지더라도 이전보다 더 건강하고 행복한 방식으로 현재에 충실하다 보면 ‘내가 선택하지 않는 이 삶’도 감내하기보다는 감사하게 될 것이다. 이번 칼럼을 마무리하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독자에게 영화 ‘와일드’ 감상과 함께,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혼자서도 바로 설 수 있다는 의미로서 산을 떠올려보고, 타다아사나를 취해보기를 바란다.

 


코칭연구소 겸 전인치유공간, I.AM@hAUM [아이엠앳하움] 대표 / 류승원(PhD)

2012년 영상학 박사과정 중에 해외에서 처음으로 요가를 접했다. 이후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인도, 미얀마, 독일, 브라질 등에서 건강과 행복을 위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 과정에서 요가와 MBSR 지도자과정을 수료했고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러나 좀 더 실질적인 웰니스 탐구를 위해 2개의 박사과정(심신통합치유학, 융합건강과학)을 추가로 수료했다. 현재는 코칭과 강의를 하며 2, 3번째 박사 논문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몇 권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관련한 칼럼을 연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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