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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신 있어요. 요가가 있으니까요!
이제 자신 있어요. 요가가 있으니까요!
  • 변윤정 기자
  • 승인 2021.05.28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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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앞에서 자랑삼아하던 요가 동작이 인생을 바꾸고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는 김희련 원장은 앞으로도 자유롭고 숨김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요가 지식과 경험을 나누겠다고 말한다. 강하면서도 부드러워 보이는 그녀에게 요가는 어떤 것인지 들어보았다.

YJ 요가는 원장님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나요? 그리고 평소에 마음속에 새기는 말이나 좌우명이 있으세요?

김희련 요가를 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0대, 20대 때의 저는 항상 불안했던 것 같아요. 겉보기에는 적극적이고 사교적이고 쾌활한 사람이었지만, 제 마음속은 항상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자신감도 부족하고 자존감도 많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나의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고 부끄러움이 많아 어떻게든 감추려하고 그래서 오히려 용기없는 내 모습을 자신 있고 떳떳하 게 보이기 위해 애썼던 시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의 나는 진하고 강한 화장도, 트렌디하고 센스있는 옷차림이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이미지를 쫓는 것이 아니라, 요가를 할 때만큼은 매트 위에서 진짜 나와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상 바르게 살려고 애쓰고 있는데, ‘진실불허(眞實不虛: 진실은 절대 허망하지 않다. 진심은 통한다), 묵연신수(默然信受: 믿고 묵묵히 따르면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이 두 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좌우명은 어렸을 때 만들었는데 ‘나답게 살자’입니다.

YJ 그럼 처음 요가를 시작한 계기도 자아의 찾기 위한 것이었나요?

김희련 요가를 수련하는 사람들의 전생에서도 끊임없이 요가 수행에 정진한 요기였다고 해요. 그만큼 요가는 대중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요가를 사랑하고 꾸준히 매트 위해서 수련하며 살아간다는 건 생각처럼 쉽지도 당연하지도 않은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 돌이켜보면,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내가 결국은 요가를 하게 되겠구나!’ 라는 운명 같은 순간들이 존재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 아버지 서재에서 수백 권의 책들 속에 파묻혀 있던 ‘요가, 그 황금빛 만남’ 이라는 책을 발견했던 날이 기억나요. 의미는 잘 모르지만 그 책에 나온 요가 동작들이 너무 신기해 혼자서 그 동작들을 따라해 보고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 앞에서 시르사 아사나, 하누만 아사나,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 에카파다 라자카포타 아사나를 교실 뒤에서 자랑하며 친구들에게 보여줬던 기억이 납니다. 호기심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던 시기였지만, ‘대체 나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나의 진로는 어떻게 할까?’ 정말 많이 고민하고 방황했지만 결국은 돌고 돌아 내가 무엇을 하고 어디에 있든 요가는 항상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심지어 유학을 갔을 때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자취생활에 힘겨워하고 있었지만 주위에 있는 요가원을 찾아 틈틈이 수련을 다닐 정도였으니까요. 20대의 가장 힘든 순간, 가장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앞길이 막막하고 불안해하며 자신감도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져 있을 때, 나를 일으켜주고 바른 삶으로 이끌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요가’였던 것 같아요! 결국 요가를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운명과 같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언제부터 시작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그저 늘 함께해 왔던 것 같아요.

YJ 그렇다면 현재 요가원을 운영하는 것은 필연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정말 행복 하시겠어요?

김희련 요가를 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지요. 하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저는 성장 진행형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현재는 요가원에서 회원들을 가르치고 지도자 과정도 하고 있지만, 때로는 마스크를 쓰고 학생으로 돌아가 수련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저의 역할로 돌아와 제가 경험한 것들을 직접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하루하루 감사하고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쁨 뒤에 힘든 일도 있습니다. 그것은 비단 저만의 고통이 아닌 모두의 고통이겠지만 바로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한 불안감이죠. 작년 초, 요가원 오픈을 하자마자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었고 아직도 그 여파에서 헤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팬데믹 상황은 그 누구에게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앞으로 더 나빠지면 어떡하지!’라는 미래의 불안감 등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서 자신감을 잃을까봐 고민하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흔들릴까 번민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무너질까 봐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들이 가장 두렵고 힘든 것 같아요.

 

YJ 코로나19로 원장님도 많이 힘드시군요. 요가원을 오픈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김희련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찾던 중 천안을 처음 가보고 이곳에 정착을 하게 되었어요. 천안은 가족도 지인도 아무도 없는 곳이 었지만 어떻게 이 곳에 자리 잡을 생각을 했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만큼 지금의 신랑이 너무 좋아서 아무 생각이 없이 오게 된 것 같아요. 천안에 와서도 당연히 요가원을 찾아가서 수련을 하고 요가 교육을 듣고 싶었지만 제가 원했던 곳이 천안에는 없었어요. 그리고 알 수 없는 외로움도 생겨 힘들었구요. 요가원을 당장 오픈하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요가를 함께 나누고 싶다. 요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련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상가를 계약을 하고, 인테리어를 준비하고 급기야 오픈을 했더라고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하고자 하는 의지와 바램이 강했었나봐요.

YJ 남편과의 만남과 결혼은 어떠셨는지요?

김희련 처음에는 주변에서 만나보라는 집요한 소개팅 권유가 있었어요. 하지만 한창 요가에 푹 빠져있었고, 수련도 물이 올라 수업도 많이 들어오던 바쁜 때였기 때문에, 연애도 결혼도 남자도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에라, 빨리 만나서 끝내자!’라는 마음으로 수업을 마친 늦은 시간에 약속을 잡고 아무 생각없이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그마저도 시간에 늦어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어요”하며 들어가는 순간 남편의 눈과 마주쳤는데…, 눈을 못 떼겠더라고요. 그냥 첫 눈에 너무 좋은 느낌이 오더라고요. 이때까지 만난 어느 누구와는 다른 감정이 들었어 요. 흔히 말하는 ‘첫눈에 반했다. 이 사람과 왠지 결혼할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만난 지 2주 만에 제가 먼저 “왜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아요?”라며 남편을 쏘아붙였어요. 그 결과 만난 지 두 달 만에 집안 어른들과 상견례를 하게 되었고, 3개월 뒤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고 평생을 부산에서만 살 것 같았던 30년 부산 토박이가 천안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YJ 어떻게 보면 초보 원장님이실 수도 있는데, 요가원 운영에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김희련 누구나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딱 들어왔을 때 바깥과는 다른 느낌. 당연히 회원들이 많이 오면 좋겠고, 더 크고 시설도 좋은 센터와 자연환경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뷰도 감상할 수 있는 센터가 부러울 때도 있지만, 지금 저에게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안심하고 수련할 수 있으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요가의 즐거움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스튜디오가 되기 위해 늘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YJ 현재 요가원 수익은 어떠세요? 그리고 어 떻게 하면 요가원을 잘 운영할 수 있을지, 원장님만의 비법이 있을까요?

김희련 아직은 오픈한 지 2년밖에 안되었고,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계신 많은 선배 원장님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확고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자리 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계산이 빠른 사람도 아니고, 사업가로서의 센스도 부족합니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것도 없고, 경험도 부족하고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를 표현하는 데 있어 좀 더 자유롭고 숨김없이 제가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저의 요가원에 오는 분들을 늘 반갑게 맞이 하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하는 것이 저의 장점입니다.

 

YJ 만약 요가원을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셨을 것 같아요?

김희련 아마도 ‘집시 여인’처럼 살고 있었을 것 같아요. 워낙 떠돌아다니기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다 보니 인도, 발리 등 전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요가를 체험하고 즐기며, 제 마음대로 살았을 것 같아요. 그랬다면 제 인생에는 결혼도 천안도 없었을 것 같은데요.

YJ 열심히 사는 원장님의 진면목을 볼 수 있 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김희련 앞으로의 계획은 머지않은 미래에 요가 지도자, 요가 전문가로서 천안에서 ‘요가’하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천안 요가쿨라’를 떠올리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생 전체를 본다면, 요가 선생님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자로서, 부모님의 딸로서, 사랑하는 남편의 아내이자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의 엄마로서 내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먹어 할머니가 되어도 흐르는 세월과 지나간 순간 속에서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겁게 요가를 수련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정리 신솔 ㅣ 사진 곽용섭, 나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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