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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함을 경험한 이는 놓아주는 법을 알게 된다
무상함을 경험한 이는 놓아주는 법을 알게 된다
  • 곽지혜
  • 승인 2021.04.2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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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 해변에서 티베트 수도승을 만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몇 년 전 난 그런 일을 경험했다. 당시는 4년간의 결혼 생활이 파경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시점이다. 나와 아내는 5일 동안의 일 정으로 맨해튼에서 마이애미로 날아갔다. 따뜻한 지방으로 가서 화해해 보려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해변에서의 휴일을 혼자 보내게 됐다. 정말 우울했다.

수도승들을 만난 날은 한 끼도 먹지 않았다. 털스웨터와 빛바랜 청바지로 몸을 꽁꽁 싸매고 놀라울 정도로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황량한 모래밭을 몇 시간 동안 터덜터덜 걷다가 허름한 숙소 근처의 해변에 있는 작은 주민회관 앞에 발이 멈췄다. 입구 위쪽에 달린 표지판에는 “티베트의 문화와 예술을 경험해 보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인도의 수도원에서 온 라마승 여섯 명이 1.8×1.8m의 목판 주변에 조용히 둘러앉아 있었다. 이들은 일주일동안 모래로 만다라를 만들 예정이었는데, 이날은 그중 둘째 날이었다. 만다라란 형형색색의 모래를 사용해서 우주를 은유적으로 나타낸 그림이다.

목판 주변의 저지선 앞에 놓인 의자에 다른 방문객 몇 명과 함께 앉았다. 어떤 손님은 눈을 감고 있었다. 엄지손가락으로 염주를 돌리며 조용히 만트라를 챈팅하는 사람도 보였다. 대부분 맨발이었다. 유일한 소음이라고는 고작 15m 떨어진 바다에서 들려 오는 파도 소리와 수도승들이 가는 막대기로 우둘 투둘한 착퍼(chakpur)의 표면을 긁는 소리뿐이었다. 착퍼란 빨대처럼 생긴 금속 깔때기이며, 수도승은 여기로 모래를 한 알씩 통과시켜 천천히 만다라를 그려나간다. 한 수도승은 숨 때문에 모래가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적갈색 옷자락으로 입을 가렸다. 잠시 후 예상하지 못했던 차분함이 날 휘감았다. 아내가 이혼을 생각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처음으로 느껴 보는 진정한 편안함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상황이 나아지길 간절히 바라느라 숨 쉬는 법조차 잊고 있었던 것 같았다.

당황하지 말지어다
그곳에 앉아 있자니 수련의 여정이란 낙하산 없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무시무시하다. 당시 내 삶이 그렇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그 추락하는 느낌이 두려워서, 때로는 물질적 안락함을 갈구하거나 미래에 대한 허황된 기대를 품곤 했다. 하지만 만다라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당황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낙하산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왜냐고? 우리는 땅을 향해 추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영원히 자유낙하한다. 한 번의 호흡이 다음 호흡으로 이어지고, 한 번의 즐거운 삶이 다음 삶으로 이어질 뿐이다. 수도승들은 정성을 다해 그린 만다라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 만다라란 만물의 덧없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그림이므로, 완성되자마자 파괴할 것이 분명했다. 이런 무상함이 만다라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 수도승들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작업하며, 때때로 조용히 말하거나 웃기만 했는데, 그 소리가 마치 최면처럼 내 마음을 달래 줬다. 결국 회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3시간 넘게 앉아 있었다. 그동안 수도승들은 단 한 번도 등을 펴거나 시계를 보지 않았다. 수도승들이 목판 너머로 몸을 숙여도 모래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만다라 위로 팔 여러 개가 왔다 갔다 하는데도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함이 느껴졌다. 그처럼 부서지기 쉬운 미술품이 대서양의 안개와 파도에 근접해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예전에 해안에서 본 어떤 축제가 떠올랐다. 바로 매년 여름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의 동부 해안에서 열리는 ‘산타바바라 모래성 축제’다. 윗옷을 벗은 참가자들이 팀을 이뤄서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양동이와 갈퀴, 흙손으로 무장하고 4.8×4.8m 넓이의 축축한 모래로 거대하고 세밀한 모래 조각을 만든다. 그중에는 이동 주택처럼 큰 조각도 있다.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타지마할이나 맨해 튼의 고층 빌딩들, 인어로 변신하는 6m 길이의 돌고래, 호그와트의 성, 웃음을 터뜨린 부처가 있다. 부지런히 일하는 모래 예술가들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세상에 모래를 조각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루가 끝나고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자 예술가들과 친구, 가족은 모두 모래밭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파도가 자신들의 예술품을 무너뜨리는 장면을 아무런 불평 없이 지켜봤다. 이 축제나 만다라 작업은 모두 요가에서 강조하는 수냐타(sunyata)를 보여 준다. 산스크리트어 수냐타는 ‘비어 있음(空)’으로 번역하며, 힌두교의 파괴 신 시바가 대변하는 가치다. 즉, 만물은 결국 무너져 내려 다른 무언가로 변한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반드시 수냐타의 중요성을 머리뿐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진짜 깨달음을 얻으려면 말이다.

 

기쁨에 집착하는 이는 빠르게 파멸하고 지나가는 기쁨에 입 맞추는 이는 영원한 햇빛 속에서 산다.

영원한 것은 없다
수냐타는 요가와 불교에서 강조하는 현실의 공허함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요가와 불교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만물이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물질이나 현상은 결국 무너져 내려 파도에 휩쓸려 간다. 이 잡지도 모래성이다. 내 결혼도 모래성이다. 내 가 소유한 요가 스튜디오나 출근할 때 사용하는 자전거, 집 뒷마당에 있는 백 살짜리 피칸 나무, 삐걱거리긴 하지만 믿음직한 내 몸도 모두 모래성이다. 이 진실을 받아들 이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힘이 생기는 것 같고, 자연히 이런 의문도 생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난 마이애미에서 깨달음의 참 의미를 배웠다. 무언가(혹은 누군가)를 쥐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손바닥을 활짝 펼치는 것이었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 크도 수냐타를 이해하고 있었나보다. 결국 문제는 모래성의 덧없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매 순간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다음에 찾아올 순간이 이 순간 못지않게 중요함을 아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도 주민회관으로 가서 수도승들 옆에 앉아 온종일 만다라 작업을 지켜봤다. 그다음 날도 그랬다. 내가 맨해튼의 텅 빈 아파트로 돌아 온 지 3일 후 수도승 여섯 명은 작업을 마쳤다. 그들의 작업을 몇 시간씩이나 지켜보는 것이 즐거운 명상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작업이 어떻게 끝날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도승들은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아름다운 만다라를 붓으로 쓸어 모래 더미로 만들고, 모래를 항아리에 담아 바다에 뿌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아내와 죽어 가는 관계를 우주의 파도에 실어 보냈고, 그러자 마음이 점점 평온해졌다.


키스 캐흐틱은 <헝그리 고스트>의 작가이며, 불교 소설 <너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없다>를 편집했다.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다르마 요가’ 의 설립자다.

 

키스 캐흐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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