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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금 이순간을 살아가기
현재 지금 이순간을 살아가기
  • 김이현
  • 승인 2021.03.09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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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는 일은 언제나 어렵지만 여행에서만큼은 예외다. 더군다나 관광객 대상이 아닌, 현지인들의 생필품과 식자재를 파는 로컬 시장을 구경한다는 설레임은 누구보다 먼저 눈을 떠 준비하게 만든다. 
발리 사람들은 너무 더운 낮을 피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장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숙소인 리조트에서 멀지 않은 시장은 현지 사람들이 하루 먹을 야채와 과일 그리고 아기자기하지만 조잡한 옷가지들과 물건들을 사고팔고 있었다. 

톡톡 터지는 옥수수 하나를 사서 입에 물고 작은 시장 구석구석을 구경하다가,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큰 길가로 나왔다. 일행과 다 같이 아침 산책을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리조트에 부탁을 해두었다. 조금 떨어진 마을에 사는 직원이 있는데 아침에 출근하는 길이 예쁘다며 그 직원을 소개해 줬고 시장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금은 퉁명스러운 직원은 논길 트레킹을 원하냐고 물었다. 신선한 경험이 될 거라며 우리 일행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출발했다. 
발리의 아침은 상쾌했다. 맑은 공기와 쏟아지는 햇살을 감당 못하는 길가의 나무들이 한껏 기지개를 켜며 힘자랑을 하는 좁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가끔 출근하는 사람들의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한쪽으로 비켜주며 서로 눈인사를 해야 하는 것 빼고는 조용하고 한적해서 걷기에 딱 좋은 조건이었다. 
30분 정도를 명상하듯 걷다가 논길을 가로지르며 흘러가는 시냇물 둑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참 논과 둑방을 걷다 보면 옹기종기 모여서 몸을 씻거나 빨래를 하는 마을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고 아침부터 물속에 들어가 놀고 있는 동네 꼬마들을 볼 수도 있다. 
현지인들 생활 그대로의 모습을 눈 앞에서 볼 수 있어서 정겹다. 반갑게 인사하는 꼬마들과 물장난을 치며 말 그대로 힐링 가득한 아침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논둑길은 갑자기 산길로 변했고 우거진 밀림이 나타났다. 논길도 상당히 미끄러웠지만, 머리 높이까지 자란 풀과 나무들을 헤치며 걸어가야 하는 발리의 밀림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길이었다. 
해가 조금씩 머리 위로 올라갈수록 날은 무더워졌고 햇살은 강렬해졌다. 아침 산책의 힐링은 점점 사라지고 군인들의 행군처럼 변해갔다. 새벽 시장 구경과 아침 산책이라고 생각하고 간단한 옷과 샌들 차림으로 나온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논길 아닌 밀림 트레킹으로 변한 것이다. 
일행들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여기저기서 작은 탄식이 들렸다.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냇가에서는 물살에 밀려가지 않도록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한걸음 한걸음 정진하듯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이름 모를 새도 만나고 많은 벌레도 만나고 갑자기 나타난 뱀 때문에 모두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어쨌든 땡볕을 걷고 걸어서 겨우 묵고 있는 리조트에 도착했다. 시장에서 출발한 지 3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직원에게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출퇴근 길이라고 한다. 
그 후 발리에서의 요가 리트릿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자연과 음식 그리고 좋은 사람들, 준비해 간 모든 일정과 프로그램이 완벽했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도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면 논길 트레킹이다. 힐링이 되었던 아침 산책뿐만 아니라 논둑길에서 미끄러지면서 넘어지고 샌들이 끊어져서 맨발로 걷던 일, 속옷까지 젖어버리며 건너야 했던 물살 빠른 시냇가, 그리고 하염없이 쏟아지던 태양을 그대로 맞으며 걷던 밀림들이 가장 기억이 난다. 
좀 더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이 아닌 왜 힘들게 걷던 논길 트레킹이 더 생각나는 걸까? 그만큼 마음속에 무엇인가를 남겼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논길 트레킹에도 모두 힘든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나름 재미있고 아름다운 순간들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의 집중 때문이 아닐까? 힘들었지만, 좋은 기억들이 어떤 에너지로 남아 가슴 깊이 간직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코로나로 우리는 1년 넘게 여행을 못 가고 있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 여행조차도 조심하고 있다. 5인 이상 집합금지 때문에 집에서의 모임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니, 여행은 커녕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날 수 없음이 아쉬울 것이다.
지금은 모두 힘들고 어렵고 아쉬운 시간들이고, 이 시간이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먼 훗날 이때를 떠올리며 무엇을 추억할 수 있을까? 그냥 힘들고 속상했던 순간들로만 기억될까? 아니면 아름답고 행복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결정은 우리들의 몫이다. 아니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집중하며 충실히 살아가느냐에 그 결과가 달려있지는 않을까? 내가, 우리가, 지금 즐거움과 행복함을 만들어낸다면 나중에 그때는 힘들어도 참 좋았다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럴 수 있도록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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