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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을 이기는 힘, 진정한 나를 찾아서
무의식을 이기는 힘, 진정한 나를 찾아서
  • 이원주 기자
  • 승인 2020.10.23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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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그늘진 구석에 깨달음의 빛을 비춰서 불행에서 해방되자

 

최근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서 어떤 젊은 엄마가 4살짜리 아이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아이가 방금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파카에 묻힌 참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있기도 했지만,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의식 좀 하고 다닐 수 없니?”라는 그녀의 말이었다. 아이도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 같았다. ‘의식하다’라는 말은 요즘 사람들이 ‘쿨하다’라는 말 못지않게 자주 쓰는 말이다. 사전에도 ‘의식’의 뜻이 열 개는 실려 있다. ‘의식’이나 ‘의식하다’라는 단어의 사용처도 다양하다. 주변 환경에 집중하려는 노력은 ‘의식하다’라고 하며, 자신의 존재나 우주의 원리에 대한 진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만든 모임의 이름에도 ‘의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1960년대 말부터 진보주의에서도 ‘의식하다’라는 말이 자주 사용됐다. 환경주의, 풀 뿌리 정치 운동, 사회책임투자, 미시경제 학처럼 자신과 문화적 배경이나 성, 인종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는 학문이나 운동에서 주로 사용돼왔다. 최근에 본 어떤 요가 축제의 포스터에는 ‘의식하라(Be Conscious)’라는 이름의 투자회사 이름이 실려있었고, 어떤 스튜디오의 이름은 ‘의식 요가(Conscious Yoga)’였다. 의식이 일종의 브랜드가 된 셈이다.

하지만 인도 베단타의 현자나 여러 요기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들은 의식이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는 입구이며, 깨달음을 얻는 도구라고 말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계속해서 바뀌어온 것처럼, 요기들이 생각하는 ‘의식 있는 삶’에 대한 정의도 변화해왔다. 내가 내면의 여정을 시작한 1970년대에는 요가와 심리학이 종종 상반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심리학은 개인적 자아에 대해 이야기했고, 요가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영원한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진정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단순히 한 차원의 진실에 눈을 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참나’를 찾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다지 신성해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모 습에도 눈을 떠야 한다. 습관적 사고방식이나 감정이 우리를 어떻게 방해하고 있는지, 언젠가는 한 번쯤 살펴봐야 한다. 불편함을 그저 밀어내려고만 하지 말고, 기회라고 생각하고 환영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를 움직이는 믿음이나 기대, 편견들을 하나씩 점검해볼 수 있다. 즉, 요가에서 말하는 ‘의식하다’의 뜻은 자신의 모든 것 대해 철저히 책임진다는 뜻이다.

 

철저한 책임

의식을 깨우려면 우선 우리 내면의 상태 (감정, 생각, 동기)가 주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몇몇 뉴에이지 종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기존의 생각을 바꾸거나 긍정적 믿음만 있으면 인생이 저절로 술술 풀린다는 말은 아니다. 당신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당신이 잘못된 생각을 했거나 인과응보 때문이라는 말도 아니다. 물론 우리가 태어난 문화나 물리적 환경이 우리의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다. 이것은 우리도 손쓸 도리가 없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에 형성된 믿음이나 편견이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왜곡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영적 수련이 이런 잘못된 믿음에서 해방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영적 수련만으로 잘못된 믿음을 모두 없애버릴 수는 없다. 예를들어 세상 만물이 하나라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을 자주 만나곤 한다. 이들은 만물이 하나의 에너지이고, ‘나’라는 자아는 존재하지 않으며, 노력만 하면 언제든 내면을 평화롭고 조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예전과 같은 감정이나 인간관계의 문제로 괴로워한다.

요가와 명상을 수련하면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심리 치료나 바디워크 요법을 받으면 습관적 사고방식에서 대부분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자유로워 지려면 무의식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반드시 의식해야 한다. 무의식을 파고들면 당신의 마음 저편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알 수 있다. 괴로움을 일으키는 생각이나 사고방식과 작별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무의식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현대 심리학의 개척자인 칼 융은 ‘투사’라는 심리 현상을 밝혀낸 바 있다. 투사란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타인의 것 이라고 떠넘겨버리는 행동이다. 베단타 경전인 <요가 바시시타>에도 비슷한 말이 실려 있다. “네 상상이 현실을 만든다.” 신경과 학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세상이 당신의 눈에 그렇게 비치는 이유는 당신 뇌에 씌워진 여과지 때문이다. 이 여과지는 당신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결정하며, 기대나 믿음에 따라 현실을 정말 그렇게 보이게 만임을 지고, 거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나중에 똑같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이전과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의식에 관한 4가지 진실


의식 있는 삶을 살려면 연습해야 한다. 무의식이 주도권을 쥐려 할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무의식의 힘이 강해질 때면 아래의 네 가지 진실을 상기하자.

1. 우리 내면의 상태가 외부의 현실을 바꾼다.
2. 그 누구(친구나 영혼의 단짝, 부모, 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도 우리 내면을 바꿀 수 없다.
3. 당신의 ‘자유의지’를 위협하는 요소는 많다. 무의식 속의 감정적 충동, 어린 시절에 형성된 잘못된 믿음, 무의식에 저장된 수많은 공포와 상처들 이 여기에 해당된다.
4. 이 모든 것에서 해방될 최적의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옹졸한 독재자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한때 나 를 업신여기고 괴롭히는 상사와 일했었다. 난 수동적으로 반응했고, 나중에는 그의 숨 소리만 들려도 겁을 먹었다. 당연히 업무 효율도 떨어졌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존감이 하락했다는 것이다. “저 남자는 왜 날 존중하지 않지? 내가 열심히 일하는 걸 왜 몰라 주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얼마 후부터 는 그의 기분을 읽을 수 있게 됐고, 아첨과 설득(힘없는 자가 옹졸한 독재자를 상대하려 갈고닦는 기술)으로 위기를 넘기는 법을 배웠다. 덕분에 교훈을 많이 얻긴 했지만, 이후 오랫동안 그 사람을 떠올릴 때면 분노가 치솟았다. 몇 년 전에 당시 같은 직장에서 일한 친구를 만나 그 상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가 여전히 그를 원망한다는 말을 듣고, 친구는 이렇게 물었다. “네가 어떻게 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나는 당연히 “내 목소리를 낸다.”가 정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웃어넘긴다.” 였다. 그가 성질을 부려도 가볍게 받아들였 더라면, 우리 둘 사이의 긴장이 완화됐을 것이다. 왜 그러지 못했던 것일까? 무의식적으로 권위자를 두려워하고, 스스로를 가치 없게 여기며 살았던 탓이 가장 클 것이다. 그러다 보니 때마침 그런 폭군을 만나 고생까지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난 피해자 노릇을 열심히 하면 더 강한 힘을 쥐고 있는 누군가(어른? 신?)가 나타나 날 구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모든 일을 내가 자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 셈이다. 그렇다고 내 말을 오해하진 마라. 그 상사가 폭군이 아니었다는 말은 아니다. 괴로운 상황을 이겨낼 힘이 없다면 괴롭힘을 당해도 싸다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한 데는 내 책임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상사에 대한 분노가 사라졌다. 진짜 문제는 무의식에 숨어있는 습관적 사고방식과 감정이었다. 그것들을 무의식의 그늘진 구석에서 끌어내서, 융의 말대로 의식과 통합시켜야 했다. 당신의 삶에는 내면이 반영된다. 연인의 경솔함에 상처를 받거나 난폭한 운전자 때문에 화가 날 때면 우리는 자기 무의식의 한 부분을 엿볼 수 있다. 연인이 경솔하게 행동하거나 운전자가 차를 난폭하게 운전한 것이 당신의 탓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당신이 애초에 쉽게 상처받거나 화를 내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그런 사람이나 상황에 쉽게 말려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단 이 진실을 받아 들이면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그리고 고통의 진짜 원인을 파헤칠 수 있다. 

그림자와 괴물들

무의식에 숨어있는 감정을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수련법은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몸의 감각에 집중 하는 것이다. 육체적 신호에 집중하면 무의식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이들 신호는 몸의 에너지나 뇌세포, 근육과도 연결돼있다. 무의식의 그늘진 곳에 빛을 비추려면 단순한 깨달음만으로는 부족하다. 부정적 패턴에서 진정으로 해방되려면 그런 감정을 몸으로 느끼고 해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의식이다. 내 친구 샤론은 지난 몇 개월 동안 이런 방식으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왔다. 샤론은 누가 봐도 성공한 친구다. 가족의 중심이고, 가치 있는 일을 하며, 훌륭한 지도자들 밑에서 요가와 명상도 수련해왔다. 하지만 샤론은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믿었다. 그것 이 단순한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뿌리치지 못했다.

샤론의 아들인 토드가 샤론의 전남편과 연휴를 보내고 싶다고 통보했을 때, 그 믿음에는 다시 불이 붙었다. 결국 크리스마스에 일이 터졌다. 온 가족이 모였지만 토드는 가지 못한다고 전화했다. 샤론은 격분에 휩싸였고 토드에게 소리치며 전화기를 내려놓은 후, 방으로 들어가 몇 시간 동안 울었다. “‘사람들이 날 싫어할 리 없잖아. 말도 안 되는 상상이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멈출 수 없었다.” 샤론이 말했다. 이처럼 감정이 솟구치는 순간은 스스로를 변화시킬 최적의 시기다. 샤론은 분노와 슬픔에 온정신을 집중하면 감정의 뿌리를 찾아서 놓아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앞의 상황에서 한걸음 물러나 지금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려봤다. 그러자 자신을 ‘사랑해줬어야 할’ 사람들이 실망만 안겨줬던 순간들이 하 나씩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의 울림은 비슷했다. 검고 뜨거운 분노와 실망, 슬픔이었다. 샤론은 의식적으로 정신을 레이저처럼 모아 슬픈 감정에 집중했다. 그리고 몸에서 그 감정을 발견했다. 가슴과 목 주변에 불타는 느낌이 느껴져서 꽉 막힌 것 처럼 불편했다. 샤론은 울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른’ 샤론의 울음이 아니었다. 어린 소녀의 울음이었다. “감정에 정신을 계속 집중하는 것이 힘들었다. 너무 불편해서 빨리 벗어 나고 싶었다. 그래서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지혜들을 떠올려봤다. 그리고 몸에서 느껴 지는 순수한 에너지의 감각에 다시 집중했다. 일종의 명상이었다. 감정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에 관한 명상.” 샤론이 말했다. 그렇게 잠시 앉아있자 날카롭던 분노와 슬픔이 조금씩 둔해졌다. 가슴도 열렸다. 어깨도 펴졌다. 무언가 해소된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날 사랑해주지 않을 때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아주 오래 전에 일어난 일 때문이라는 것을 나도 알았다. 현재 상황과는 상관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몸의 에너지로 느끼는 것은 분명 달랐다.” 샤론이 회상했다. 그 후로 샤론은 누군가 그녀와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말해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요즘도 가끔 울컥할 때가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괴로워 몸부림치거나 상처받는 일은 없다.” 샤론이 말했다. 8세기에 활동한 베단타의 위대한 지도자인 샹카라차리야는 한 순간의 깨달음이 일생에 거쳐 누적된 습관을 모두 바꾸어놓는다고 말했다. 몇 세기를 살아온 숲이 불에 전소되 듯이 말이다. 우리의 의식에는 그런 힘이 깃들어있다. 하지만 한 순간의 깨달음만으로 는 부족할 때도 있다. 몸에 뭉침과 공포가 느 껴지는 부위에 몇 달이나 몇 년 동안 정신을 집중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샤론의 경우에서 봤던 것처럼 언젠가 변화는 일어난다. 무의식의 그늘진 곳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어두운 방에 불을 켜는 것과 비슷하다. 무의식 속 감정들에 익숙해지면 항상 불을 켜놔도 괜찮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두려워하던 용이나 괴물도 그림자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 더 이상 괴물들을 물리칠 필요도 없다. 괴물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샐리 켐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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