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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 운명의 아이
[reflection] 운명의 아이
  • Editor Dada
  • 승인 2021.01.24 0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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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요기(yogi)가 인도를 순례하던 도중에 자신이 알던 모성에 대한 개념을 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포용한다.
photo by Unsplash

 

어머니날은 내게 어머니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슬픔을 가져다준다.

8년 동안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행복은 날 피해 갔다.

남편과 내가 거주하는 일본은 입양이 흔치 않은 나라다. 일본에선 혈통이 봉건시대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며, 자신의 혈통을 이어받을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특히나 나 같은 외국인에게 말이다. 우리 부부는 입양 신청을 했지만, 남편이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은 희박했다. 43살이었고, 어머니가 되고자 했던 오랜 갈망이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다행스럽게도 요가를 수련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일종의 수련 과정으로 생각하게 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난 많은 어머니들이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을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했다. ‘난 도대체 왜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인가?’ 난 그 답에 대해 명상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거나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사랑을 경험하고 싶었다. , 모성애 말이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실망과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을 때, 난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비록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보육원에서 입양 알선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내게 모국인 인도로 순례를 떠나 볼 것을 권했다. 만약 정말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면 그러한 욕망을 버리고 현재의 삶에 있는 그대로 만족할 수는 없는 걸까? 난 그 답을 찾아야 했기에 짐을 싸서 비행기에 올랐다. 인도가 내 마음을 치유해 줄 완벽한 장소가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소원을 빌다

나의 목적지는 인도 케랄라주에 자리한 마타 암리타난다마이 데비의 아시람이었고, 난 그곳에서 안아 주는 성자로 알려진 영적인 스승 암마를 만날 계획이었다. 8월의 습한 저녁에 인근의 해변 호텔에 자정이 넘어 도착해서 풀로 지은 바닷가 오두막에서 밤을 보냈다. 밤새 까마귀가 깍깍 울고 들개가 짖어 대는 바람에 일종의 환각 상태에 빠졌고,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침엔 파도 소리가 잠을 깨웠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한 운전기사의 차에 올라서 야자나무가 무성한 후미, 운하, 주변의 길을 따라 달렸다. 물은 내륙으로 흘렀고, 과일과 생선, 화물을 실은 보트로 북적거렸다.

우리가 탄 지프차는 소, 농부, 머리에 짐을 인 여자들, 그리고 온 가족이 올라탄 오토바이와 길을 나누어 썼다. 땅이 움푹 파인 곳을 지날 때면 머리가 차 천장에 부딪혔다. 우리 차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발리우드 히트곡은 사람, 동물, 자동차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과 장단을 맞췄다. 몇 시간 후, 우리는 거대한 분홍색 콘크리트 아시람의 철문 앞에 도착했다. 암마가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강당 안엔 수천 명의 사람이 바닥에 앉아 종교적인 노래를 부르고, 명상하거나, 혹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잠을 자고 있었다.

난 마음이 평화로워졌고, 희망에 부풀었다.

그날은 상서로운 날이었다. 50대 후반의 할머니 같은 여성인 암마는 숱이 많은 갈색 머리에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 있었고, 마치 데비 여신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금박을 입힌 은색 머릿수건을 쓰고 하늘하늘한 청홍색 사리를 입은 암마는 연단에 앉아 신자들에게 둘러싸여 몇 시간 동안 화장실조차 가지 않고 팔을 벌려 사람들을 포옹했다. 난 사람들의 감동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암마에게 매달리는 바람에 억지로 떼어 내야 했다.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난 궁금했다.사람들이 저렇게 감동하는 이유는 암마의 순수한 마음 때문인가?’ 암마는 우리는 육체나 정신에 제한된 존재가 아니며, 영원히 행복한 의식이다.”라고 가르친다. 힌두 사상에 따르면, 신성한 사람에게 에너지를 전달받으면 우리 내면에도 그와 똑같은 자질이 일깨워진다고 한다. 이 모든 사람들은 암마처럼 더없이 행복한 의식에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자리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다 보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널찍해졌다. 비록 암마(암마의 뜻은 어머니이다.)는 나의 생모가 아니지만, 그녀는 내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어머니다운 존재였다. 암마는 상대가 몸 곳곳에 끔찍한 상처가 있든지 혹은 값비싸고 아름다운 실크 사리를 입고 있든지 상관없이, 팔을 활짝 벌려 모든 이들을 힘차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몸 전체에서 동정심이 뿜어져 나왔다. 난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바로 저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 포기와 희생 말이다. 암마가 조건 없이 사랑과 위로를 베푸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감정이 북받쳤다. 방 전체가 사랑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사랑은 전염성이 있었다.

드디어 연단 근처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서로를 더 거칠게 밀치기 시작했다. 흰 무명옷을 입은 자원봉사자 한 명이, 암마가 끌어안으면 소원을 빌라고 알려 줬다. 내 차례가 됐을 때 난 속삭였다. 어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암마는 포근하고 아늑한 품으로 날 끌어안으며, 내 귀에 대고 만트라 하나를 읊었다. 고막이 진동했고, 그 진동은 내 몸을 지나 방 전체로 퍼지는 것처럼 보였다.

내 귀에는 두르가, 두르가, 두르가라는 소리가 맴돌았다.

 

두르가는 위대한 여신 마하데비의 화신이며, 세상 속 여성의 힘을 상징한다. 두르가는 호랑이를 타고 다니는 거친 전사이며, 18개의 팔에 무기를 들고 탐욕과 집착 같은 정신적인 악마들을 퇴치한다. 그녀의 힘은 모든 힌두교 신의 힘을 합친 것만큼 강력하다. 난 귀의 울림을 여전히 간직한 채로 비틀거리며 인파 속으로 돌아왔다. 난 자문했다.암마가 정말 나에게 그 만트라를 읊은 것인가? 암마는 모든 이들에게 그 만트라를 읊어 주는 것일까? 이 만트라가 정말 중요한 걸까?”몸에 힘이 느껴졌다. 성스러운 장소나 깨달음을 얻은 존재 주변에선 우리가 누구인지를 기억하고, 광활한 에너지장에 접속하기가 더 쉽다고 알려져 있다. 난 그 순간과 나의 만트라, 나의 소원을 잊지 않기 위해서 아시람 기념품점에서 나무 염주를 구입했다. 그리고 미로 같은 아시람 구내를 벗어나 밖에서 기다리던 운전기사에게 갔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해변으로 돌아오는 내내 귓속에선 만트라가 울려 퍼졌다. 몇 시간이 마치 몇 분처럼 지나갔지만, 여전히 마음속엔 행복이 가득했고, 암마의 활짝 뻗은 팔에서 느껴지던 온기가 여전히 느껴졌다. 호텔로 돌아온 후 침대에 누워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에 빠졌다. 

 

균형 되찾기 

다음 날, 고대의 치유법에 따라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 코발람 남쪽에 위치한 아유르베다 치유 센터를 방문했다. 난 고대 의학이 임신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일주일간 머물기로 예약한 상태였다. 최소한 몸의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랐다. 아유르베다 의사는 나의 도샤(dosha), 즉 체질을 진단하더니 바타의 균형이 깨졌다고 말했다. 즉 초조한 에너지가 지나치게 많다는 뜻이었다. 수많은 현대 여성처럼 난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왔고, 몸의 중심을 되찾아야 했다. 의사는 내 몸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서 일주일 동안 매일 요가와 명상을 수련하고, 전통 기름 마사지인 아비얀가를 받을 것을 처방했다. 난 야자 잎을 이어서 만든 오두막 안에 놓인 나무 의자에 알몸으로 앉았다. 그러자 한 젊은 여자가 물과 꽃을 공물로 바치고 기도를 올린 후 내 제3의 눈에 붉은색 빈디를 그리고, 내게 불타는 향을 털었다. 참기름에 뒤덮인 채로 바닥에 엎드리자 그녀는 천장에 연결된 끈에 매달려서 내 등과 다리 위를 걷기 시작했다. 그녀의 발은 일정한 리듬에 따라 피부를 파고들면서 혈액순환을 돕고 뻣뻣한 근육을 풀어 줬다. 내가 몸을 뒤집자 그녀는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그날은 기온이 43도였다. 땀이 흘렀다. 뻘뻘. 마사지가 끝난 후엔 신들이 마시는 꿀이라 불리는 코코넛을 통째로 들이켰다. 아침 식사는 집에서 만든 빵과 채식 카레였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일주일 중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 난 생각했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야.”

식사를 마치고 해변을 걸었다. 아직 아침 8시가 안 됐고, 지역 어부들은 그물로 정어리처럼 작은 생선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잡어도 많았다. 수많은 복어가 위험을 물리치기 위해 몸을 부풀린 채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어부들은 복어를 그물에서 풀어 줬지만, 다시 바다로 던져 줄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내가 살던 도쿄에선 이 치명적인 생물이 별미로 여겨지지만, 인도에선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도 인도 요리사들이 복어의 독을 제거하는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것 같았다.수백 마리의 복어가 해변에 누워 호흡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난 생각했다. 이게 바로 지옥이야.” 그리고 커다란 복어에 걸려 넘어질 뻔했는데, 복어의 슬픈 눈이 파르르 떨렸다. 난 신발로 그 복어를 가볍게 차서 바다로 다시 돌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강한 파도가 복어를 다시 해변으로 밀어냈고, 복어는 돌처럼 굴러서 돌아왔다. 손으로 집어 보려고도 했지만, 가시 때문에 손이 아팠다. 하지만 곧 복어의 몸이 부드러워졌다. 힘이 빠졌거나 혹은 나의 의도를 알아차린것 같았다. 난 복어를 바다로 던진 후 복어가 무사하길 바라며 헤엄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약간은 비이성적인 생각이지만, 난 그 복어가 임신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난 생각했다. ‘알을 낳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살고 싶겠지만, 생존을 방해하는 주변의 힘이 너무 강해.’ 난 복어가 해변으로 다시 떠밀려 오지 않는지 지켜보고 싶었지만,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실내로 피신해야 했다.

오두막에서 휴식하며 사색했다. “새 생명을 잉태하려면 모든 생명을 소중히 생각해야 해.” 그날 밤, 벌 한 마리가 저녁상에 오른 꿀단지에 빠졌고, 난 벌을 떠서 풀어 줬다. 샤워를 하다가 애벌레 한 마리를 물에 떠내려가게 할 뻔도 했다. 난 애벌레를 놓아주면서, 엄마가 되는 방법은 수백 가지가 있으며, 출산은 그중 고작 한 가지 방법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 검진 때, 아유르베다 의사는 동정심 어린 눈길로 나를 응시하면서 여자들이 자신의 자궁을 사용해서 다른 이들의 아기를 낳아 주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거기로 가 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난 요청하지도 않은 충고에 방어적인 태도로 받아치고 싶었다. 사람들은 내가 임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자신의 자매, 고모, 친구 혹은 육촌이 특별한 치료법이나 식이요법, 의사, 심상화 기법으로 효과를 봤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어떤 것도 내겐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말하는 대신에 의사에게 신경 써 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마음속으로 그녀를 포옹했다. 난 암마가 됐다.

글: 레자 로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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