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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와의 만남] 아헹가 요가 강사 케리 오웨르코
[마스터와의 만남] 아헹가 요가 강사 케리 오웨르코
  • 이상욱
  • 승인 2020.12.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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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캐리 오웨르코/요가저널

 

전 세계 최고의 요가 전문지 <요가저널>은 최근 새롭게 선보이는 온라인 프로그램 '마스터 클래스'에 캐리 오웨르코의 수업을 추가하였다. 스스로를 전통과 거리가 먼 아헹가 요가 강사라고 소개하는 오웨르코는 20년 넘게 무용과 연극 활동에 전념했었다. 즐겁게 놀면서 경험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교습법을 좋아하는 그녀의 수업에 참가하면 점프나 소품을 활용하는 수업 방법에 놀랄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이나 잠재력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지닌 사람에게 도전 과제를 부여해서 한계를 극복하게 만들 때 요가 강사로서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고 오웨르코는 말한다.

다음은 새로운 '마스터 클래스' 수업을 진행 할 오웨르코와 <요가저널>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해 본다.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사이에 무용 극단에서 일하다가 요가에 처음 흥미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인체로 취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움직임을 탐구했다. 몸, 호흡, 움직임, 의미에 관한 심오하고 색다른 실험을 하기도 했다. 폴란드의 연극 연출가인 예지 그로토프스키에게 부분적인 영감을 받아 실시한 작업들이었다. 그로토프스키는 요가 수련의 영향을 받은 작품 들도 선보였는데, 그런 작품을 볼 때마다 호기심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다양한 형태의 요가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평소 믿고 지내던 요가 지도자의 추천을 받아서 맨해튼 서쪽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아헹가 중급자 코스를 듣게 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벨트와 담요를 여섯 개씩 사용하는 매우 복잡한 수업이었다. 난 특수 제작된 벨트의 버클도 제대로 채우지 못했고, 담요도 올바르게 접지 못했다. 요가를 수련한 경험도 있고 수년간 인체의 움직임을 연구해 왔지만 수업을 따라가기는 힘들었다. 선생님은 엄격했지만 친절했다. 날 가엽게 여기셨던지 자세와 소품을 놓고 끙끙대는 나를 옆에서 도와 주셨다. 우리는 벨트를 사용해서 등과 팔다리에 다양한 유형의 힘을 가했고, 수업 도중이나 수업을 마친 후에는 항상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초보자 수업을 들어 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아헹가 요가를 좀 더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 안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새로운 공간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관절과 척추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함께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요가라는 것을 제대로 수련해 볼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에도 조금 변화가 생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헹가 요가에도 놀라울 정도로 창의적인 놀이나 실험 같은 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인도 푸네에서 B.K.S. 아헹가의 딸인 기타가 진행하는 수업에 참가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파리브르타 자누 시르사아사나, 파리브르타 파스치모타나아사나처럼 상체를 옆으로 숙이는 자세를 수련했다. 기타는 제자들의 몸을 뒤흔들며 뒹굴게 만들었다. 몸으로 재즈 음악을 연주하는 기분이었다. 난 아헹가 요가의 창시자인 B.K.S. 아헹가가 몸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였다고 생각한다. 아헹가는 예술이자 과학인 요가를 연구하는 데 완전히 몰두했다. 또한 아헹가는 요가 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수련을 통해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고, 제자들이 의미 있는 수련을 할 수 있도록(그리고 삶을 충만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왔다. 제자들이 요가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도울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했다. 정신 나간 과학자처럼 약간 거친 면도 있었다. 가끔은 실험을 하고 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난 그렇게 놀이처럼 즐기는 아헹가(그리고 그의 자식들)의 수련법을 통해 요가에 대한 가장 큰 가르침을 얻게 되었다. 놀이처럼 즐기는 수련은 체계적으로 실시하는 수련과 균형을 맞춰 주며, 수련의 효능을 한층 더 높여 준다. 또한 놀이는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 주며, 놀이는 인간이라는 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놀이는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아헹가 가문과 함께 수련하던 시절에는 기타와 기타의 형제인 프라샨트와 푸네에 있는 ‘라마마니 아헹가 요가 연구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지난 18년 동안 적어도 2년에 한 번은 그곳을 방문해 요가를 공부하고 왔다. 구루지(우리는 아헹가를 그렇게 불렀다)는 1984년에 공식적으로 은퇴했지만 가르침을 멈추지 않았다. 가끔은 기타의 수업에 들어와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구루지는 내가 지닌 모든 경계심이나 망설임을 뚫고 세포에 직접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구루지의 가르침에 따라 타다아사나(산 자세)에서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위를 향한 활 자세)로 넘어갈 때면 마치 무릎 뒤에 눈이 달린 기분이 들었다. 파리브르타 트리코나아사나 같은 자세를 수련할 때면 내면에 존재하는 불의 원소와 물의 원소를 동시에 느끼는 방법도 가르쳐 주셨다. 구루지의 존재감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해 봐야 할 그런 경험이다. 내가 구루지와 함께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한 번은 연구소 앞의 계단에서 구루지와 잊지 못할 순간을 함께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친구와 막 푸네에 도착한 참이었다. 1년 동안 아버지가 아프셔서 힘든 시간을 보내느라 살도 1.5킬로그램 빠졌었다. 구루지는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좀 말랐구나?” 친구는 구루지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는 내가 똑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루지가 옳았다. 난 살도 빠지고, 슬픔에도 젖어 있었다. 아헹가는 그런 것들을 잘 눈치채셨다. 우리 내면과 외면의 상태를 금방 알아채셨다. 아헹가의 말씀은 내 외모를 평가하는 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내가 힘든 시기를 겪었음을 알아봐 주시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제자들에게 관심이 많고, 제자들을 항상 염려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그분만의 방식이었다. 

그처럼 제자들을 깊이 배려하는 마음이 아헹가의 지도 방식에 잘 녹아들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아헹가는 가끔 가혹해지기도 하셨다. 난 그분의 그런 지도 방식을 인정하거나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가 경험한 아헹가는 세상 모든 사람들처럼 정말 인간적인 분이셨다. 결국 그분이 원하셨던 것은 제자들이 성장해서 잘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아헹가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 요가를 탐구하려는 그분의 열정과 열의, 끝없는 에너지는 전염력이 있었다. 그것은 배움과 탐구, 나눔을 좋아하는 내게 그분이 준 가장 큰 선물이기도 했다. 아헹가는 항상 열린 마음과 호기심, 집중력을 잃지 않았고 사람들과 요가를 나누고 싶어 했다. 난 그분의 그런 자질들이 황금 못지않게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아헹가 요가의 본질도 바로 그러한 것이다.

현시대를 사는 요가 수련자들은 아헹가가 던졌던 질문들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연구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요가 수련과 요가 공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궁리해야 하며,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길을 의식적으로 선택해 나가야 한다. 자기 자신(그리고 타인)이 안정감, 편안함,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야 한다. 물론 요가 그 자체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영원한 수련법이지만 요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요가는 매 순간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방식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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