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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집중하면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진다
명상에 집중하면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진다
  • 박지은
  • 승인 2019.11.18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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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젊은 시절, 일본 선불교를 공부하면서 뛰어난 지도자 세 분께 가르침을 받았다. 서양에 최초로 선불교를 전파한 마스터 순류 스즈키, 스즈키와 함께 ‘타사자라 젠 마운틴 센터’를 설립하고 수도승식 수련법을 전파한 코분 치노, 그리고 서양에 최초로 불교대학을 설립한 티벳 출신의 지도자 쵸감 투른파다. 이 세 분의 마스터는 말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세 분 모두 서양인 제자들의 학습을 돕기 위해 전통적인 형식에서 탈피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특히 코분 마스터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코분은 ‘자신을 절대 불교 신자라고 일컫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전통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찾으란 말씀이셨다.

어느 날 오후, 코분과 투른파 마스터가 만났다. 두 분은 친한 친구 사이이며, 평소에 서예를 즐기셨다. 그날은 코분의 제자들 몇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를 마시며 글을 쓰셨다. 먼저 한 분의 스승이 바닥에 커다란 종이를 펼쳐 놓고, 무릎을 꿇고, 우아한 서체로 지혜로운 글귀를 종이 위에 쓰시고, 자신이 쓰신 말을 영어로 번역해 주셨다. 한 분의 작업이 끝나면 다른 분이 작업을 시작하셨다. 이건 두 분 사이의 일종의 대결이 됐다. 한 분이 남기신 글에 다른 분이 반박하는 식으로 토론을 이어가는 셈이었다.

그러던 중, 투른파(평소처럼 양복과 넥타이를 차려입은)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런 글을 남겼다. “모든 불자의 마음은 항상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불교에선 전통적으로 현재에 집중할 것을 강조해 왔다. 하늘하늘 흩날리는 수도승 가운을 입은 코분은 커다란 붓을 들고 먹을 묻힌 후에 능숙한 서체로 이런 글을 남겼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마음 상태가 최고다.” 지켜보던 제자들은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선불교에선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이미 깨달음을 얻은 불자라고 말한다. 명상이란 그저 당신의 내면에 잠재한, 불자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뜻이다(사실 코분과 투른파는 이 문제에 대해 논쟁을 벌인 게 아니다. 둘은 두 가지 관점을 모두 인정했다).

 

HEAR THIS
10~15분의 시간을 내서 ‘듣는 수련’을 해 보자.

편안히 앉아서 눈을 감자. 가능하다면 정원처럼 자연과 가까운 곳이 좋다. 최소한 자연의 소리가 들려야 한다. 사람들의 목소리나 음악 소리, 라디오, TV의 소음이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이제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 특정한 소리에만 집중하거나, 이 소리 저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자. 카메라 렌즈를 열듯이 의식을 열고 귀가 아니라 온몸을 사용해 소리를 듣자.

계속 이완하며, 놓아 버리자. 그리고 소리가 들리도록 놔두자. 만약 의식이 특정한 소리에 집중하려 한다면 의식은 그대로 놔두고 몸을 계속 이완해 나가자. 그러면 다른 감각들도 차차 주의에 들어올 것이다. 의자에 닿은 피부의 촉감, 피부를 스치는 공기의 촉감 같은 것들 말이다. 그저 소리가 들리도록 놔두고, 절대 집중하려 하지 말자.

그러면 진정한 의미에서 소리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사라진다!

이 수련을 계속하면 깨달음은 당신이 억지로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고요함 속에서 자연스레 얻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될 거다. 이러한 사실은 정신을 집중해선 절대 알 수 없다. 그저 존재 그대로 존재할 때만 깨달을 수 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존재하도록 놔두고, 당신의 고요한 존재 속으로 몸을 이완하자.

 

 

※ 자세한 내용은 〈요가저널〉 2017년 1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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