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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 혜원 할머니 생각
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 혜원 할머니 생각
  • 이상욱
  • 승인 2019.11.0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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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혜원 할머니 생각

신경숙 작가

 

도무지 요가 스튜디오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우리 동네에 요가 스튜디오가 생기고 지금까지 운영 중에 있다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그 앞을 지나게 될 때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요가 스튜디오 쪽을 올려다본다. 아침에 분명 다녀왔으나 그사이 사라져버렸을까 봐서. 그러다 문득 요가 스튜디오가 생길 때부터 계속 함께해왔던 혜원 할머니 생각이 난다. 영어 선생님이었다고 들었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혜원 할머니는 동네에 요가 스튜디오가 오픈할 때부터 함께했다. 작은 키에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군살이라곤 전혀 없는 단단한 몸을 지니고 계셨다. 항상 9시 반 수업 시간에 가장 먼저 와 있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매트를 깔아서 시간이 지나면서는 ‘여기는 혜원 할머니 자리’라고 여기게 되어 혹 그분이 조금 늦게 나타나도 그 자리엔 아무도 매트를 깔지 않았다. 곧 오실 거니까. 짐작과 같이 혜원 할머니는 곧 나타나 그 자리에 매트를 깔고 밝게 웃으셨다. 우리 동네의 요가 스튜디오가 오픈하고 지금까지 혜원 할머니가 가장 고령자일 것이나 젊은 누구보다도 요가 아사나들을 바르게 소화했다. 은근히 나중에 저분처럼 늙었으면 하는 마음이 일었는데 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혜원 할머니 덕분에 요가 스튜디오 분위기는 서로에게 다정했다. 먼저 인사를 하시니 나중엔 저절로 이쪽에서 먼저 인사를 하게 되었고, 봄에는 마당에 돋은 쑥을 캐서 만든 것이라며 쑥개떡을 만들어 바구니에 담아 오시기도 했다. 요가가 끝난 후 요가 선생님이랑 회원들이 빙 둘러앉아 하나씩 나눠 먹는 재미도 그분 덕에 가능했다. 스승의 날이 끼어 있는 오월에는 혜원 할머니 주도로 조금씩 돈을 모아 요가를 가르치는 선생님께 작은 선물도 할 수 있었고, 한 해가 지날 때는 집에서 한 가지씩 음식을 가져와서 요가 스튜디오에 펼쳐놓고 송년회도 했었다. 쓰다 보니 문득 ‘이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우리가 꽤 오랫동안 정말 이웃 같은 분위기를 누려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누군가 며칠 보이지 않으면 어디 아프신가 싶었고, 어떤 분은 농장을 갖고 있는데 블루베리를 기른다면서 한 번씩 따 와 씻어서 나눠 먹기도 했던 기억. 허리를 숙이고 일하다가 고단해지면 농장 한 편에 깔아둔 요가 매트 위로 올라가 태양 경배 자세를 몇 세트 하는데, 그게 매우 도움이 된다며 블루베리 기르기와 요가의 영향 관계를 얘기해 우리를 환하게 웃게 하기도 했다. 요가보다는 요가복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듯한 아주머니 한 분도 있었다. 덩치가 좀 큰 분이었는데 요가복이 일곱 벌은 되었지 싶다. 일주일 정도는 요가복이 겹치지 않았으니까. 우리 요가 스튜디오 수업이 월요일은 아쉬탕가, 화요일은 인요가, 수요일은 하타요가 이런 스케줄인데 그분은 “그때그때 요가복을 맞춰 입어야 제대로 하는 기분이 들어서.”라고 매일 요가복이 바뀌는 이유를 설명했다. 바지만 길고 짧은 것 두 벌인 채로 십 년도 넘게 요가를 해온 나를 살펴보게도 했다.

 

"그분은 그렇게 같은 동네에 살긴 하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라
요가를 마치고 별 대화 없이 자리를 뜨려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붙이고 모여 앉게 하는 힘이 있었다."

 

어떤 분은 어려서부터 작은 키가 콤플렉스였는데, 요가를 통해 자신의 체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생겨 가장 뜻깊은 경험이라고도 했다.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생각해보니 모두 혜원 할머니 덕분이었다. 그분은 그렇게 같은 동네에 살긴 하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라 요가를 마치고 별 대화 없이 자리를 뜨려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붙이고 모여 앉게 하는 힘이 있었다. 모여 앉으면 하나둘씩 그렇게 얘기들을 시작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그랬다. 그 분위기는 당연히 요가 수업을 받는 동안의 좋은 기운으로 번지곤 했다. <엄마를 부탁해>가 연극으로 만들어져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혜원 할머니를 비롯해 시간이 되는 몇 분들을 연극 보러 오시라고 초대를 했던 기억도 난다. 요가복을 입은 모습들만 보다가 공연장에서 외출복 차림의 그분들을 만났을 때 ‘어… 이렇게나 멋쟁이들이셨구나.’ 싶어 많이 즐거웠던 기억도 난다. 혜원 할머니 덕에 그런 일이 그냥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러던 혜원 할머니가 몇 해 전부터 드문드문 요가 스튜디오에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분이 요가 수업에 빠지면 표가 났다. 거의 가장 먼저 와서 지정석처럼 굳어진 자리에 매트를 깔고 호흡이나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가, 사람들이 들어오면 미소를 짓거나 안부를 물어주던 분이 보이지 않으면 뭔가 텅 빈 느낌이 들곤 했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사람들도 혜원 할머니가 며칠 보이지 않으면 요가 선생님께 “혜원 할머니가 왜 나오시지 않느냐.”고 묻곤 했다. “집안일 때문에…”, “감기에 걸리셔서…” 그런 대답을 듣곤 하다가도 며칠 지나 다시 나타나시면 모두 반가워하곤 했는데, 그런 일이 잦아지더니 한 번은 거의 몇 개월을 나오시지 않았다. 나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이 그분의 안부를 묻는 일이 빈번해지자 따로 알아봤는지 “허리 통증이 심해서 요가를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고 요가 선생님이 전해주었다. 팔십이 지난 연세에도 허리고 등이고 굽은 데 없이 짱짱해 보이셨는데… 은근히 걱정되었다. ‘수술을 하셨을까?’ 생각하면서도 물구나무도 힘들이지 않고 반듯하게 서던 혜원 할머니 같은 분도 허리가 아픈데, ‘내가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될까…’ 싶은 생각도 들어 마음이 조용해졌다. 사실 소설을 쓰는 일을 계속해온 것 외에 내가 포기하지 않고 요가를 계속해온 마음 저변에는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었을 때를 생각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지금보다는 나이가 더 들었을 때 허리나 다리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야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고 산보를 할 수 있으니까. 나는 거기에 눈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큰데 그것은 글을 쓰지 못하게 될 만큼 나이가 들어도 책을 읽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예전에 어떤 이가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어머니가 팔순이 훨씬 지난 그때에도 눈이 아주 밝다고 했다. 그 이유가 어려서 어머니 집 우물 바로 옆에 당근밭이 있었는데, 매일 우물에 갈 때마다 당근을 뽑아 한 개씩 섭취한 덕분이라고. 이상하게도 그 이야기가 잊히지 않아서 나는 지금도 장을 볼 때마다 당근을 산다. 같은 분량의 당근과 브로콜리, 양배추와 토마토에 물을 붓고 끓여서 통에 담아두고 그걸 갈아서 아침으로 먹는다. 당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당근 피클도 만들고 당근을 채를 쳐서 볶아먹기도 하며, 생당근을 갈면 너무 당근 냄새가 나니까 당근을 쪄서 우유를 부어 갈아 마시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당근 섭취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통증이 없는 허리와 다리를 나이가 들어서도 유지하기 위해 요가를 계속하는 마음과 비슷하다. 나이가 들어서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력의 눈을 가지기 위해서. 그러니까 나는 내 발로 산보를 하고 내 눈으로 책을 읽고 싶은 할머니가 되고 싶은 걸 거다. 그런데 그렇게 요가를 열심히 하고 심지어는 잘하기까지 하는 혜원 할머니가 허리가 아프다는 말이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할머니는 몇 개월 후에 다시 요가 스튜디오에 나타나셨다.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많이 아프셨느냐 물으니 “늙으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대답하셨다. 늙으면 병을 친구로 여겨야 한다고도. 병을 친구로 여기고 지내는 나이… 피해갈 수 없는 그런 때가 누구에게나 온다는 게 혜원 할머니의 짧은 대답 속에 섞여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다시 나타난 혜원 할머니의 요가 하는 모습을 할머니는 눈치 안 채게 살펴보곤 했다. 언뜻 느끼기엔 그 전과 달라진 점이 없어 보여서 내심 안심했다. 한 번은 혜원 할머니 옆에 매트를 깔고 요가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혜원 할머니가 예전과 달리 수업 도중에도 잠깐씩 호흡하는 자세로 쉬신다는 것을 알았다. 사이드 플랭크 자세나 나바아사나를 하다가 할머니는 평온한 모습으로 사바아나사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 모습도 내게는 지혜로워 보였다.

그러던 할머니를 벌써 일 년 가까이 요가 스튜디오에서 만날 수가 없다. 할머니가 항상 요가를 하던 자리에 새로 들어온 분이 매트를 깐 지가 오래되었다. 요가 스튜디오에 갈 때마다 ‘오늘은 오셨을까?’ 하는 마음으로 스튜디오 문을 열면 맨 먼저 혜원 할머니 자리를 바라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오늘도 안 오시네.’ 하는 실망과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 싶은 걱정이 동시에 스쳐 가는 날들이 길어졌다. 지난여름 베를린으로 떠나면서는 요가 스튜디오에 보관하던 매트를 집으로 가져오면서, ‘내가 베를린에서 돌아왔을 때는 혜원 할머니도 다시 요가 스튜디오에 돌아와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할머니 자리를 바라봤다. 그러나 한 달 후에 돌아왔을 때도 혜원 할머니의 모습은 요가 스튜디오에서 뵐 수가 없었다. 처음엔 요가 선생님께 혜원 할머니 안부를 묻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더니 근래엔 묻는 사람도 거의 없다. 아마 요가를 하러 새로 들어온 회원들은 혜원 할머니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겠지. 수업을 하다가 집중이 되지 않을 때는 꼭 혜원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면 혜원 할머니 자리를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거기에 혜원 할머니가 그 작고 단단한 몸으로 서 계신 것만 같다. 혜원 할머니 생각이 나서 어느 날은 요가 원장님에게서 혜원 할머니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었다. 그런 지도 두 달이 흘렀다. 그 전화번호를 볼 때마다 전화를 걸려다가 그만두곤 한다. 혹시 나쁜 소식을 듣게 될까 겁이 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다. 어느 날은 햇빛이 좋아 홀로 동네 산책을 하면서 ‘혜원 할머니 집은 어디였을까?’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서로 깊이 알지 못했지만 15년 가까이 한 공간에서 아침마다 만난 혜원 할머니! 어디에 계시든 이 가을볕을 즐기고 계시기를, 그러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뵐 수 있기를.

 

"병을 친구로 여기고 지내는 나이…
피해갈 수 없는 그런 때가 누구에게나 온다는 게
혜원 할머니의 짧은 대답 속에 섞여 있었다."

 

※ 자세한 내용은 〈요가저널〉 2019년 1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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