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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 한계를 넘어가봐야 했을까?
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 한계를 넘어가봐야 했을까?
  • 박지은
  • 승인 2019.10.02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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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한계를 넘어가봐야 했을까?

신경숙 작가


엊그제 만난 친구가 “요가는 계속 하지?”라고 물었다. “이젠 정말 잘하겠다. 요가 선생 해도 되지 않아?” 하는데 꼭 놀리는 것 같았다. 요가를 해온 햇수로 보면 친구 말과 비슷해야 할 것 같은데 나의 요가 실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예전에는, 아니 예전이랄 것도 없이 작년까지만 해도 잘 되던 아사나들이 지금은 유지하는 데 인내를 요구한다. 친구에게 “작품 쓴 지 오래되었다고 계속 잘 쓰게 되는 건 아니잖아. 요가도 그거와 비슷해.”라고 변명했다. 변명이 아니라 솔직한 심정이다.

가끔 ‘만약 내가 지금 신춘문예에 작품을 투고한다면 당선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지금의 내가 신춘문예뿐 아니라 신인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곳에 작품을 투고해본다고 했을 때, 과연 당선이 될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나는 스물한 살 때 처음으로 <한국일보>의 신춘문예에 투고를 했다. 기억으론 마감 당일에 찍힌 우체국 소인도 해당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알고 있었음에도 믿지 못해서 직접 신문사에 가서 투고함에 넣고 온 기억이 난다. 그때는 원고지에 작품을 썼다. 펀치로 구멍을 뚫어 검은 끈으로 묶었던 기억, 원고를 투고함에 넣을 때 설레던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크리스마스 무렵에 수상자에게는 연락이 온다는데 그 날짜가 지났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처음 투고해본 것이라 별로 실망하지도 않았다. 다만 어떤 작품이 당선되었는지 알고 싶어 1월 1일자 신문(그 당시는 오로지 신춘문예 당선작품을 읽기 위해서 새해 첫날 가판대를 찾아가서 1월 1일자 신문을 보이는 대로 모두 사 와서 읽곤 했다)을 구해 와서 내가 투고한 신문사의 신문 먼저 펼쳐 당선 작품과 심사평을 읽어보는데, 거기에 당선작과 최종까지 겨룬 작품으로 내 작품이 거론되어 있었다. 최종심까지 오른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떨어졌는데 그게 무슨 위안이냐고? 하여튼 그런 사람이 있는데 그게 그때의 나였다. 뭐랄까, 우물 바깥으로 나가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계속 쓰면 된다는 신호를 받은 느낌이었다. ‘그래, 이렇게 계속 써보자’라는 자신감 같은 게 마음 어딘가에 생겼다. 신춘문예에서 그런 위로(?)를 받고 다시 중편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그해 가을에 <문예중앙>에 투고를 했는데 그 작품이 나의 등단작인 ‘겨울 우화’이다. 신기하게도 당선을 한 작가는 나와 생년월일이 같은 남성 작가였다. 어떻게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 둘이 한 지면에서 당선작과 가작으로 등단을 하게 되었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꽤 오랫동안 어떤 자리에서 그 작가를 만나게 되면 나와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으로 기억되었으까.

 

"우물 바깥으로 나가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계속 쓰면 된다는 신호를 받은 느낌이었다.
‘그래, 이렇게 계속 써보자’라는 자신감 같은 게 마음 어딘가에 생겼다."

 

기억에 남는 또 한 가지 일은, 우리들과 끝까지 최종심에서 겨룬 작가가 있었는데 그는 그 낙선한 작품을 가지고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다시 투고를 했다. 나도 가작인 게 걸려서 새 중편소설을 완성해서 그 작가와 같은 부문에 투고를 했다. 결과는 <문예중앙>에서 나와 겨뤘던 그에게 이번엔 내가 밀려 또 최종심에 이름만 거론된 채 낙선했다. 그로부터 세월이 삼십 몇 년이 흐른 지금도 가끔 그 과정들을 반추해볼 때가 있다. <문예중앙>에서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 졌으면 그 다음 몇 개월 뒤에 있었던 <동아일보>에서도 내가 뽑혀야 될 것 같은데 그땐 그가 당선이고 나는 낙선이었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이런 것이다. 보는 눈에 따라 다르고, 취향에 따라 따르고, 어디에 관점을 두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어떤 작가든 이 모든 관점에 비추어서 항상 잘 쓰기란 힘든 일이다. 항상이 아니라 바로 전에 발표한 작품보다 더 낫게 쓰는 일도 어렵고, 작가의 연륜이 쌓였다고 해서 작품도 더 나아지란 법이 없다.

뜬금없는 비유 같지만 요즘 나에겐 요가가 그렇다. 작품 쓰는 일 이외에 가장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해온 일이 요가라고 틈만 나면 말하곤 했는데, 요즘엔 그 말을 할 때 끝이 흐려진다. 점점 나빠지고 있어서. 물론 나는 이보다 더 나빠져도 요가를 계속할 것이다. 왜냐면 요가는 이제 나에게 한 끼 식사 같은 것이 되었으니까. 계속 숨을 쉬듯이, 내가 작가이니 계속해서 글을 쓰듯이 요가는 이제 이유 없이 나의 일상이 유지되는 한 계속 하는 그런 것이 되었다. 계속 하는데 나빠지고 있으니 기운이 빠지는 때가 있긴 하다. 누군가 “요가는 계속 하고?”라고 물으면 “하기는 하는데… 점점 더 잘 안 되네.”라고 대답하는 내 목소리도 작아졌다. 요가 이야기가 나오면 저절로 앞에 앉은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요가의 필요성을 설파하곤 했던 내가 요즘은 “다른 운동을 이렇게 오래 해왔으면 선수가 되었을 텐데 말이야.” 하고 덧붙이기도 한다. 생각해본다. 내가 달리기를 계속 해왔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나의 체중이 과체중일 리 없고, 내가 테니스를 이리 오랜 세월 해왔다면 ‘어떤 시합에 출전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내 몸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요가의 아사나들을 잘 못 하고 있다. 무릎이 끊어질 듯 당겨서 수타 비라 아사나를 1분 이상 유지하기도 힘들고(요가를 하고 몇 달이 지났을 때 이 아사나를 하면 요가 선생님이 내 허벅지 위로 올라가 자근자근 밟아줘도 아프기는커녕 시원하기만 했는데), 나바 아사나를 할 때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이마에서 진땀이 나고, 하누마 아사나는 고통 때문에 아직 단 한 번도 완성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어느 순간 발전은 멈춘 것 같았으나 유지는 계속되고 있었으므로 큰 회의가 없다가, 어느 지점부터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문득문득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왜 유지조차 되지 않는 걸까. 나이 탓일까? 요인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예전에는 가뿐했던 학 자세를 요즘엔 아예 시도하기조차 힘들어졌다. 익숙해지면서 더는 시도를 멈추게 된 탓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요가를 계속하고 있는 나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는 마음도 발전을 막는 데 한몫하고 있었는지도. ‘방치하고 있지 않다’, ‘무엇인가 하고 있다’라는 안도감이 내 마음 저변에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요가 선생님들의 수많은 말씀을 다 접어두고, “자신의 몸이 가능한 만큼만 하라.”라는 처음 들었던 말에 지나치게 의존해 있는 상태가 나의 상태였다. 내가 만난 첫 요가 선생님의 그 말씀은 매우 힘이 되긴 했다. 아니었으면 유연하지 못한 것, 남들은 다 되는데 나만 되지 않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의 그 말씀을 언덕 삼아 나는 이만큼밖에 되지 않는 것에 별로 안타까움이 없었다. 고통을 받아들이거나 한계를 뛰어넘어 다른 한계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그 말을 방패 삼아 안주해왔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선생님은 “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갔을 때의 상태를 기억한다.”라고 말해주었다. 몸의 기억력은 대단히 뛰어나서 한 번 도달해본 한계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번에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몸은 이미 한번 넘어가본 그 지점까지는 가볼 준비가 되어 있다고도 했다. 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만큼 무한한데 몸의 주인인 우리가 고통과 대면하지 않거나 새로운 시도를 주저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끈기를 가지고 고통을 호흡으로 안정시켜 안아주고, 그 한계를 넘어가보고 또 넘어가보라고.

 

"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만큼 무한한데 몸의 주인인 우리가 고통과 대면하지 않거나
새로운 시도를 주저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끈기를 가지고 고통을 호흡으로
안정시켜 안아주고, 그 한계를 넘어가보고 또 넘어가보라고."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데 아주 오래 전에 <새야 새야>라는 단편을 쓰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서른을 갓 넘은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 약국에 갓 취업한 여동생과 사직동에 있는 독신자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스튜디오 형식의 그 작은 아파트에는 침대가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잠을 자러 가려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게 되어 있었는데 누우면 바로 천장이 보이곤 했다. 자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다가 머리를 찧기도 하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다가 발을 잘못 디뎌 바닥으로 나동그라지기도 했던 기억을 남겨준 방이다. 그 침대 밑에 서른을 갓 넘긴 내가 글을 쓰던 책상이 있었다. 깊은 밤중에 글을 쓰다 보면 머리 위 공중에 매달린 침대에서 고단한 여동생의 숨소리가 들렸다.
글이 잘 될 때는 그 숨소리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글이 잘 안 될 때는 매우 신경 쓰였던 그 애의 숨소리. <새야 새야>를 그 침대 밑의 책상에서 썼다. 이런 말이 읽는 사람에게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으나 그 작품은 그때 아니었으면 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가끔 <새야 새야>를 꺼내 읽어보는데(그런 작품이 몇 있다) 읽을 때마다 ‘지금은 이렇게 쓸 수가 없을 거야’ 싶은, 무엇인가를 상실한 마음이 배어든다. 그때여서 가능했다. 그나이여서, 그 감정이어서, 그 상황이 어서. 그런 작품을 썼으니 그런 마음으로 또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단 한 번뿐이다. 무슨 슬픈 일을 당했는지 자꾸만 자신을 “숨겨주세요.”라고 말하며 메마른 우물 속에 숨어드는 비렁뱅이 여자를, 선천적으로 말을 못하게 태어난 남자가 한겨울 밤에 등에 업고 산속의 어머니 묘지를 찾아가는 장면을 쓰고 있었다. 그곳에 여자를 숨겨주려고 눈 내리는 겨울 산속 밤을 묘사하는 일에서 나는 숨을 죽였다. 그에겐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형이 있다.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형에게 말해준다. ‘움직이는 것들에게선 소리가 난다.’라고. 형은 묻는다. ‘소리를 어떻게 아느냐?’라고. 다시 ‘귀에 들리는 거야.’라고 동생이 대답해준다. ‘필담’이다. 형은 기러기를 보며 ‘저 새는 무슨 소리를 내는가?’ 묻는다. 동생은 ‘포르르’라고 적으려다가 ‘그리운 소리’라고 적어준다. 이후 형은 움직이는 것만 보면 동생에게 묻고, 답을 얻는다. ‘물은? 헤어지는 소리’, ‘뱀은? 눈이 감기는 소리’, ‘때까치는? 대문 여는 소리’, ‘바람은? 잠 깨우는 소리’

형이 ‘기차는 무슨 소리를 내느냐?’라고 물을 때, 나는 동생이 되어 ‘과거로부터 도망치는 소리를 낸다.’라고 썼다. 그렇게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문장들이 있다.

숨겨달라며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비렁뱅이 여자를 등에 업고 눈 내리는 겨울밤 산속의 능선을 넘어가는 장면을 묘사하다가, 나는 이상한 기운에 가끔 얼어붙었다. 다리가 짧은 짐승이 비명을 지르며 내달리고 날개 달린 것들이 느닷없는 인기척에 퍼르르, 날아오르는 장면들을 묘사하다가 슬며시 의자에서 일어섰다. 분명 내가 쓰고 있는 문장인데 그게 현실처럼 느껴지고 무서워졌다. 내가 마치 어떤 아픈 여자를 등에 업고 아무도 없는 겨울밤의 산속을 헤매고 있는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게 들어서. 소설을 쓰다가 가끔 그런 느낌에 휘둘릴 때가 있으나 그때처럼 생생해서야 어디 제정신이랄 수가 있을지. 나는 기묘한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여기까지만’이라고 하며 한 문장을 쓰고 일어나고, 다시 ‘여기까지만’ 하고선 다시 한 문장을 쓰고 의자에서 일어나기를 반복해가며 소설을 완성했다. ‘여기까지만’ 하며 한 문장을 쓸 때마다 어느 밤 겨울 골짜기의 눈, 새들, 나무들이 그 문장을 쓰고 있는 나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더 쓰고는 얼른 사다리를 타고 침대로 올라가 여동생 곁에 누웠다. 후다닥 이불 속으로 들어가 여동생을 껴안으니 잠들어 있던 여동생이 “언니 왜 그래?”라고 물어서 “응응.” 얼버무렸던 기억이 난다.

요가를 할 때 ‘조금만 더’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계선을 한 번씩 꾸준히 넘어갔으면 나는 지금 하누마 아사나도 완성할 수 있었을까? 의자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앉으며 ‘여기까지만’ 하고 거기까지 가고, 다시 ‘여기까지만’ 하면서 거기까지 가며 한 문장씩 더 쓰고 더 써서 그 소설을 완성했듯이.

어쩌면 나에겐 체형적으로 불가능한 아사나였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거밖에는 안 된다고 미리 생각하고 거기에서 늘 멈추었다. 그 한계를 넘어가려면 수축된 근육이 이완되는 통증을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한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언제나 거기에 멈추어 있다 보니 세월과 함께 점점 멈추는 지점이 더 빨라졌다. 그러니 아직도 내게 미완성인 아사나들이 수두룩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요가를 할 때 ‘조금만 더’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계선을 한 번씩 꾸준히 넘어갔으면 나는 지금 하누마 아사나도 완성할 수 있었을까? ‘여기까지만’ 하면서 거기까지 가며 한 문장씩 더 쓰고 더 써서 그 소설을 완성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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