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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베를린에선 호흡만…
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베를린에선 호흡만…
  • 박지은
  • 승인 2019.09.0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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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베를린에선 호흡만…

신경숙 작가

 

고백 같은 것을 하자면 나는 탐험을 좋아하거나 새로운 것에 격렬히 반응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아니다’라고 하지 않고 ‘아닌 것 같다’라고 하는 것은 때때로 여행을 가서 보게 되는 사람들이나 풍경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런 풍경도 있구나’ 하며 자주 넋이 빠지는 편이기도 해서다. 그런 때를 제외하고는 나는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식당에 가게 되면 늘 내가 주문해왔던 것만 주문하고, 도서관에 가면 일단 내가 앉던 자리가 비어있는지 확인해 그 자리에 앉는 편이다. 그러니 당연히 내 일상 공간의 의자라든가 거울, 가방을 내려놓은 자리나 책상이 놓인 위치가 바뀌는 법이 없다. 이사를 해서 어떤 물건을 한번 그 자리에 놓으면 그곳이 곧 그 사물의 위치가 되어버린다. 사는 집의 식탁에 여덟 개의 의자가 있는데 내가 앉는 의자가 그 식탁을 구한 지 15년 만에 가장 먼저 못 쓰게 되었다. 처음엔 똑같은 의자였는데 내가 항상 그 의자에만 앉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똑같지 않은 의자가 되기 시작했다. 누가 내가 앉던 자리의 의자를 어쩌다 바꿔놓으면 금방 알게 될 만큼 의자의 모양이 달라졌다. 나는 누가 내가 앉던 의자를 바꿔놓으면 다시 찾아 그 자리에 놓고 앉곤 했다. 설명할 순 없지만, 의자는 헤지고 낡아 가는데 그것이 내 몸과 맞아 편안했기 때문에. 내가 내 책상이 있는 서재에 앉아 있는 것보다 식탁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하다 보니 그 의자를 사용하는 시간이 길어져 의자의 등 쪽이 헤지기 시작했다. 나중엔 엉덩이가 닿는 곳까지 뜯어지기 시작했다.

집에 자주 와서 시원찮은 모과나무에 약을 쳐주고 감나무 밑에 거름도 묻어주는 오빠가 어느 날 의자를 하나 구해 와서 “이제 그거 버리고 여기에 앉아라.”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등 쪽과 앉는 쪽이 뜯기고 패여 오빠가 사 온 의자로 바꾸긴 했는데 늘 앉던 의자를 버리질 못하고 다른 곳에 세워두었다. 처음 생각은 ‘어떻게든 고쳐봐야지…’였지만 눈에 띌 때는 ‘저 의자 고칠 수 있는 곳을 알아봐야지…’였다가, 그 자리를 떠나면 다른 일에 밀려 잊어버리고는 다시 보게 되면 ‘고쳐야지…’ 하는 그런 나날들.

사람이 그러다 보니 새로운 곳에 가서 글을 쓰는 일이 내게는 시간이 걸린다. 새로 생긴 북 카페 같은 곳을 지나가다 ‘아, 나도 저기 앉아 글을 쓰면 좋겠다’ 싶은데 막상 가서 글을 쓰면 아마 쓰지 못할 것이다. 어딘가로 작품을 쓰러 가려면 적응하는 날짜를 계산해서 가야 한다. 도착해서 며칠은 거기 책상이나 탁자에 앉아보고 주변 환경이 어찌 되어있는지 배회하며 살펴보는 시간이 지나야… 라고 쓰다 보니 반문이 생긴다. 사실 내게 뭐가 이렇다는 게 정해져 있겠는가. 이것도 어쩌면 나도 모르게 내가 나에게 들인 습관일 것이다. 좋은 습관이랄 것도 그렇다고 나쁘다고 할 것도 없지만 불편하긴 하다.

작년에 파리에서 노화가의 작업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 빛을 주로 그리는 그분의 작품들을 감상하는데 내게는 그 작품들에서 새벽빛이 많이 느껴졌다. 문득 이분은 새벽에 작업을 할지도 모르겠구나 싶어 작업을 주로 언제 하시느냐 물었다가 인상적인 대답을 들었다. 그분은 언제나 새벽 3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20분 정도 잠자리를 정리하고 차를 한잔 마시고 아침까지 작업을 시작한다며 그건 자신이 40년 동안 지켜온 작업 시간이라고. “여행하실 때는요?”라고 물으니 기상 시간은 어디에 있으나 똑같다고 했다. 파리에서 2시간쯤 떨어진 곳에 집이 있는데 그곳에서 지낼 때도 마찬가지고 한국에 들어와 지낼 때도 마찬가지라고. 파리에서나 프랑스의 시골집에서나 한국에서나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달라질 게 없다고. 좀 놀랐다. 어디에 있든 새벽 3시에 일어나 잠자리를 정리하고 작업에 들어가는 일을 40년 동안 해오셨다니. 나 또한 내가 소설 쓰기에 집중할 때면 그분과 마찬가지로 새벽 3시쯤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침 9시까지는 책상에 앉아 있는 편이다. 그러나 그분처럼 어디서나 그렇게 되진 않는다. 익숙한 내 책상이 있는 집을 떠나게 되면 바로 그 리듬이 깨진다. 그 리듬을 회복하려면 그곳이 눈에 익을 때까지 여러 날이 필요하다. 그곳의 시간에 적응하고 그곳의 탁자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지난 7월 19일에서 8월 16일까지 베를린에 있었다. 베를린의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근처에 요가 스튜디오를 찾아보았다. 서울의 내 집에서처럼 가까운 곳에는 없었고 어디든 1km 정도는 걸어가야 하는 곳에 요가 스튜디오들이 있었다. 어디든 한곳을 정해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요가를 하고 싶은 게 내 생각이었다. 요가 스튜디오 리스트를 살펴보는 기준은 아침 9시 근처에 클래스가 있는지와 영어 수업인지를 보는 것이었다. 영어 수업도 잘 못 알아듣겠지만 그래도 독일어보다는 낫겠지 싶은 마음. 아직도 잘 안 되는 아사나들이 더 많지만(의문이다. 어쨌거나 놓지 않고 15년을 해왔으면 안 되는 동작보다 되는 동작이 더 많아야 할 것 같은데…) 어쨌든 이것도 내가 서울에서 9시 30분에 요가 스튜디오에 가는 익숙한 습관 때문에 베를린에서도 그 시간을 찾게 만들었다. 인터넷으로만 검색해보고 스튜디오를 정하는 일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베를린 숙소에 도착한 다음날 길을 나섰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 먼저 가보았는데 서울로 치면 동네 주민 센터 같은 곳이었다. 주변이 강변이고 나무도 많고 자전거를 세워놓을 수 있는 마당도 넓어서 마음에 들었는데 모두 휴가를 간 것인지 건물에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인기척이 있기를 기다려보았으나 허사였다. 그 허사를 시작으로 여러 번의 허사가 이어졌다. 인터넷으로 숙소 주변의 요가 스튜디오를 찾아 구글 맵의 길찾기를 따라 찾아가 보면 시간이 안 맞아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열리지 않는 문이 여럿이었다. “시간표까지 확인해서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을 맞춰야 했나 보다.”라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 닫힌 문 앞에서 물러 나오기를 몇 번 하다가 깨달은 것은 베를린엔 요가 스튜디오만큼이나 보디 밸런스라는 이름의 무용 스튜디오도 많다는 것. 나중에 친구에게 요가 스튜디오보다 무용 스튜디오가 더 많은 도시 같다고 했더니 베를린이 현대무용 쪽으로 발달해온 도시라 그럴 거라고 했다. 마땅한 요가 스튜디오를 못 찾으면 무용 스튜디오 수준이 높은 도시이니 이번에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내가 무용을?’ 웃음이 나와서 혼자 여러 번 웃었다. 무용 스튜디오를 경험하는 일은 신선한 일이긴 할 것이다. 무슨 요청이 들어왔을 때 안 해본 일이면 무엇이든 수락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녀라면 요가 스튜디오를 찾다가도 분명 무용 스튜디오로 변경을 했을 텐데. 어쩌랴, 나라는 인간은 그 반대이다 못해 베를린에서도 서울에서와 비슷한 시간대에 요가를 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찾고 있으니. 첫날 요가 스튜디오 정하는 것은 실패하고, 다음날 찾아가 본 곳에서 “1회 체험을 할 수 있는 티켓이 있으니 그걸 시도해볼래?”라고 권유했다. 눈이 반짝했는데 어떻게 요금을 책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1회 체험이 18유로이고 4주 클래스는 39유로였다. 1회 체험으로는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고 4주에 39유로는 또 지나치게 적은 액수 같이 느껴졌다. 거기다 숙소에서 걸어서 1.7km인 곳이라 생각해보겠다고 하고서 나왔다. 이곳에서 1회 체험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보람이 있었다. 다음날 숙소에서 900m만 가면 되는 요가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내가 “베를린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 여행자.”라고 하니 1회 체험을 권유했는데 그곳은 또 비용이 10유로였다. 그렇게 해서 베를린에서 첫 요가를 해보게 되었다. 바로 수업이 시작되어 스튜디오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벽에 밧줄들이 달려있는 요가 스튜디오였다. ‘밧줄?’ 갑자기 긴장이 되어 어쩌나 하고 있는데 낯선 이방인인 나를 관찰하고 있던 옆의 독일 할머니께서 내게 매트를 가져다주고 방석도 가져다주며 앉으라고 손짓하며 미소를 지었다. 둘러보니 젊은이는 거의 없고(나도 이제 젊다고는 할 수 없다) 대부분 할머니들이고 어쩌다 할아버지 몇이 섞여 있었다. ‘그래, 1회 체험이니 어디 체험해보자’며 깊은숨을 한번 쉬고 베를린에서 첫 요가 수업에 임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를 들으며 옆의 친절한 할머니를 살펴보면서 따라 할 수 있는 데까지 따라 했는데 이 요가의 아사나들이 아쉬탕가인지 하타 요가인지 인요가인지 구별이 되질 않았다. 그래도 나는 따라 했다. 나중엔 모두 벽으로 가서 밧줄에 허리를 묶고 밧줄에 의지해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동작도 했다. 밧줄을 이용한 동작들이 20분 넘게 이어졌는데 그게 이런 동작이었다고 쓰기가 애매할 만큼 ‘이게 요가일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러나 곧 이건 체험이라고 다독이고 또 한편으로는 ‘네가 요가에 대해서 알기는 알아?’, ‘이거 뭐지?’ 싶은 반문이 드는 마음을 고요하게 다독이며 독일 할머니들이 하는 대로 따라 했다. 그렇게 시작된 1회 체험을 숙소 근처의 몇 요가원에서 몇 번 더 시도해보다가, 나는 베를린에서 요가 스튜디오에 나가는 걸 체념하고 대신 요가 매트를 하나 구입했다. 탐험이나 새로운 것보다는 일상과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내게는 1회 체험으로 이 요가 스튜디오 저 요가 스튜디오를 다니는 일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오십 년이 넘게 살았으면서도 이렇게 자기 자신을 모른다. 처음 갔던 곳에서 밧줄과 함께하는 요가가 낯설어도 그곳에 계속 나갔다면 나는 곧 익숙해졌을 것이고 ‘이게 요가일까?’ 하는 의문은 가지면서도 베를린에서 요가는 계속 배웠을 텐데, 1회 체험을 여러 곳에서 해보자는 판단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때쯤은 베를린 시간에 적응되어 새벽 3시쯤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시차 때문에 잠이 오지 않은 시간이었을 수도 있겠다. 작년에 파리에서 만난 노화가의 작품이 준 감동과 함께 남아있던 그분의 말씀, 집을 떠나도 언제 어디서나 새벽 3시에 일어나 잠자리를 정리하고 작업에 들어간다는 말씀이 일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나의 마음에 남아있었다. 집이 아니어도, 나도 그러고 싶었다. 새벽 3시쯤 잠이 깰 수 있게 알람을 맞춰놓고 잤으나 알람 소리가 들리기 이전에 눈이 떠졌다. 눈을 뜨면 숙소의 거실로 나와 요가 매트를 펼쳐놓고 복식호흡을 시작으로 호흡을 했다. 여기에서 요가 스튜디오를 계속 다니는 것은 포기했지만 바르게 숨은 쉬고는 있자는 마음으로.

"마땅한 요가 스튜디오를 못 찾으면 무용 스튜디오 수준이 높은 도시니
이번에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내가 무용을?’ 웃음이 나와서 혼자 여러 번 웃었다."

인도에서는 호흡을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복식호흡을 시작으로 스톱워치를 맞춰놓고 가능한 한 일 분에 백 번의 정뇌 호흡을 하는 중에도 들이마신 숨을 토해내는 교호 호흡을 거쳐 풀무 호흡으로 이어가는 중에는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 호흡이 신과 연결되어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질 것 같아, 그저 호흡하는 중에라도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으려 했다.

"여러 호흡을 이어가는 중에는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 호흡이 신과 연결되어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질 것 같아,
그저 호흡하는 중에라도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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