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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속초에서 요가
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속초에서 요가
  • 박지은
  • 승인 2019.08.0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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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속초에서 요가

신경숙 작가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위로가 필요할 때면 생각나는 친구. 우리는 같은 학교에 다닌 적도, 태생지가 같지도, 나이가 같지도 않다. 일로 만났던 우리가 어떤 계기로 친구가 되었는지조차 잊을 만큼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나는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도 그랬을지는 의문이다. 친구의 직장이 있는 건물 아래 커피집에서 만나 잠시 후에 헤어질 때도 많았지만 그냥 그 친구를 만나 얘기를 하다 보면 안개 속 같던 일들의 실마리가 보이곤 했다.

친구의 직장이 광화문에 있어서 나에게 광화문은 친구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우리가 친구가 된 이후 나는 광화문에 나갈 일이 있을 때면 친구에게 광화문에 나가는데 차 마실 수 있어? 라고 문자를 보내곤 했는데 그게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광화문에 나갈 때면 그 친구에게 전화나 문자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제 친구가 은퇴를 앞두고 있다. 우리가 만났던 때는 <풍금이 있던 자리>를 출간했을 때이니 93년이고 그때 우리는 삼십 대였다.

친구는 가끔씩 한 직장에서 삼십 년 넘게 일을 해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도 믿기지 않는다. <풍금이 있던 자리>를 쓰던 때로부터이렇게 세월이 흘렀다는 게 믿어지든 아니든 세월은 그렇게 흘러간다. 친구는 또 말한다. “나는 내가 한 회사를 이렇게 오래 다닐 줄 몰랐어.”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얼굴은 정말 몰랐다는 표정이다. 친구의 얼굴에 묻어나는 얼마간의 당황스러움과 쓸쓸함과 마주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친구의 손을 가만히 잡게 된다. 세세히는 몰라도 친구가 직장을 그만둘 위기 상황이 왜 없었겠는가. 그런데도 삼십 년 넘게 한 회사에서 일을 해왔다니, 정말 장하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와 오랜 세월을 함께하다 보니 친구의 친구 두 명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친구는 나에게 그들을 소개하며 ‘편안한 친구들’이라고 했다. 나의 주변에는 글 쓰는 동료들만 있으니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 말 때문이 아니라 나는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좋았다. 그들과 함께하고 있으면 문득문득 이 사회는 그들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만큼 그들은 어느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았다.

 

그들과 함께하고 있으면 문득문득 이 사회는 그들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만큼 그들은 어느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았다.

 

어느 해이던가. 한 일 년쯤 우리 넷은 한 달에 한 번, 함께 요리를 함께 배우기로 했다. 어차피 한 달에 한 번쯤은 만날 것인데 그 시간을 뭐라도 배우는 생산적인 시간으로 만들자는 친구의 제안이었다. 그 친구다운 알찬 제안이었다. 내 친구는 나보다 두 살이 많았고 친구를 통해 만난 친구들도 각자 나이들이 달랐으나 그냥 우리는 호칭 없이 친구로 지냈다. 나를 제외한 세 사람 모두 직장이 같아 퇴근 시간이 비슷했다. 그중 한 사람은 출판 업무를 하는데 요리책을 만들고 있었다. 그 인연으로 우리가 나중에 공 선생님이라고 부른 요리 선생님께 우리를 소개했고, 공 선생의 스튜디오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요리를 배웠다. ‘요리를 배웠다’라고 하자니 머쓱하다. 배웠다기보다 공 선생님이 준비해놓은 재료들을 가지고 꼼지락꼼지락 조리해 식탁을 차렸다는 게 맞다. 두부 요리일 때도 있었고, 스파게티일 때도 있었고, 일본식 덮밥일 때도 있었다. 때로는 케이크를 구울 때도 있었다. 우리가 공 선생님이 준비해놓은 재료를 자르고, 다지고, 끓이고, 굽고, 버무려서 식탁을 차리면 공 선생님은 거기에 맞는 와인이나 정종들을 내놓았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의 공통점이 술을 안 마시거나 딱 한 잔씩밖에 못 해서 각자 따라 앞의 술잔들에 채워진 술들을 바꿔가며 내가 마셨다.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며 마시는 한잔 한잔들은 정말 맛있었다. 요리를 배웠다기보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나날들 속에 찾아오는 소박한 휴식의 시간이었다. 이를테면 지금의 요가를 하는 것 같은 시간. 무엇을 만들든 다 맛있었고 행복했다. 우리는 정말 이거 우리가 만든 게 맞아? 감탄하며 음식들을 다 먹었다.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한없이 얘기들을 나누기도 했다.

공 선생님과 친구들은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출판되고 그 에디터 로빈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도 그녀를 위해서 맛난 한국 음식들을 만들어주었다(이 기억은 방금 이 글을 쓰다가 떠올렸다. 나도 참 무심하다. 그 따뜻한 시간을 잊고 있었다니).

공 선생의 스튜디오에서 따뜻한 음식들을 만들고 식탁을 차려 자신을 환영해주던 친구들의 모습에 로빈은 ‘원더풀’을 외치며 거의 울 것처럼 놀라고 감동하고 행복해했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 친구들이 만들어준 사적인 식탁이었으니까.
우리는 매달 돈을 십만 원씩 모으기도 했다. 언젠가 그 돈으로 여행을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돈이 꽤 모였을 때까지도 좀처럼 우리에게 여행을 갈 시간이 찾아오지 않았다. 나만 빼고 모두 시간을 쪼개 쓰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엉뚱하게 함께 홍콩에 가게 되었다. <엄마를 부탁해>가 홍콩에서 맨 아시아 문학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그 친구들이 함께했다. 계획한 일이 아니었다. 주최 측에서 여섯 명의 수상 후보 중의 한 사람임을 알려오며 시상식 전날 밤에 낭독회가 있는데 참석해줄 것을 청해왔다. 맨 아시아 문학상의 시상식은 우리 영화제와 비슷하게 치러졌다. 수상자뿐만 아니라 후보자들을 함께 불러 시상식 전날에 함께 낭독회를 했다. 수상자 발표와 시상식은 다음날에 있었고 그 자리에도 후보자들이 모두 참석해 수상자 발표를 함께 듣는 형식이었다. 그러니까 수상자를 발표할 때까지 누가 수상자인지 모른 채로 함께 낭독회를 하는 것이었다.

친구를 만났을 때 무심히 그런 일이 있다고 말했더니 친구가 그럼 우리도 같이 가자고 했다. 돈이 다 모여졌는데도 함께 여행 갈 시간을 좀처럼 내지 못하고 있던 터라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했는데, 어떻게 된 건지 모두 시간을 맞추었다. 그렇게 우리는 홍콩에 함께 갔다. 나는 혼자 갈 상황이었는데 그 친구들이 동반해줘서 든든한 느낌이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수상자가 아니라 후보자로 가는데 친구 셋이 같이 간다 싶어 좀 우습기도 했는데, 막상 홍콩에 가보니 다른 여섯 명의 후보자들은 가족과 번역가와 함께 왔고 일본, 중국, 인도의 후보자들은 그 나라의 기자들도 함께 와 있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시상식 전날의 낭독회는 아름다웠다. 홍콩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작가들은 모국어로, 통역자들은 영어로 낭독을 이어갔다. 이름은 들었지만, 얼굴은 처음 보는 아시아 작가들과 함께 작품 낭독을 하다 보니 아, 이 작가들도 어디선가 각자의 책상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친구들도 이런 낭독회는 처음이라며 즐거워했다.

낭독회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나에게 수상소감을 생각해두었느냐고 물었다. 수상소감? 나는 그냥 친구들과 여행 온 마음이라 수상소감 같은 것은 생각도 않고 있었다. 내가 무슨 수상소감? 했더니 혹시 모르니 생각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자 친구가 다그치듯이 수상소감을 준비하게 했다. 친구의 재촉에 의해 할 수 없이 당시의 중국에서 북한 탈북자들을 다시 북으로 송환하고 있는 상황을 수상소감에 담아 써두었다. 그들이 돌아가서 당할 고초에 대해서.

다음날 수상자 발표와 시상식이 같이 있었을 때는 다른 나라에 출장 갔던 한국 에이전트가 일부러 홍콩에 들러 참석했다. 영사관에서도 참사관 한 분이 참석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테이블에 친구들과 빙 둘러앉아 주최 측에서 준비한 만찬을 먹다가 나는 자꾸 미끄러운 스타킹 때문에 구두가 벗겨져 아예 스타킹을 벗어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화장실로 가서 스타킹을 벗고 돌아오는데 곧 수상자 발표가 이어졌다. 내 작품과 내 이름이 호명되어 자리에 앉으려고 엉거주춤해 있던 나는 그 길로 상을 받으러 단상으로 나아갔다. 친구의 재촉으로 쓰인 수상소감이 정말로 쓰일 줄이야. 친구들과 여행 삼아 들른 시상식에 내가 수상자가 될 줄은 몰라서 당황했으나 친구들도 얼결에 시상식에 참석하게 된 셈이라 웃음도 나오고, 그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는지 그들과 함께가 아니었으면 수상식이 쓸쓸할 뻔했다. 우리는 그날 밤 홍콩 밤거리를 신이 나서 쏘다녔다. 술도 못 마시는 친구들인데도 술에 취한 사람들처럼 기분 좋고 흥겹게.

홍콩에 다녀온 후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한동안 우리는 만날 때마다 홍콩 얘기를 했다. 그리고 매번 여행을 가자는 말을 나눴다. 하지만 모두 각자 자기 삶을 꾸려가기 바빴다. 한 친구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고, 9시까지 출근을 해야 했고, 수험생 아이들이 있었기에 넷이 딱 맞는 날을 잡기가 이렇게 힘이 드는데 그때 홍콩으로 가는 일은 어떻게 그리 척 맞을 수가 있었는지, 가족을 이루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행을 떠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가볍게 여기저기를 훌쩍훌쩍 떠났다 돌아오는 사람들이 들으면 ‘응?’ 하겠고 나 또한 어디든 쉽게 오가는 사람 축에 들지만, 친구들과 시간을 맞추려고 보니 친구들과 여행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했다. 그래도 우리는 또 한 번 어렵게 시간을 맞춰서 이번엔 속초 쪽으로 1박 2일 여행을 갔다. 한 친구가 운전을 맡아 그 자동차에 넷이 동승하게 되었을 때부터 느껴지는 해방감. 아마 누구나 그 기분 때문에 여행을 할 것이다. 자동차가 서울을 벗어나면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풍경에―사실 그다지 놀라울 것도 아니었음에도― 연신 감탄을 하며 우리는 속초로 향했다. 치밀하게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는 친구 하나가 이미 알아놓은 막국수 집에서 먹는 점심은 또 왜 그렇게 맛있는지, 막 부쳐서 나온 감자전은 왜 그렇게 고소한지, 어
렵게 길을 떠나면 모든 게 다 다시 보인다. 풍경, 사람, 이야기들 속에서 도착한 속초의 바다를 우리는 실컷 만끽했다. 그리고 밤이 왔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저녁을 먹고 바다 냄새를 맡으며 긴 산책을 하고 또 한껏 얘기를 나누었어도 저녁 8시 반이었다.

저녁 8시 반. 여행지가 아니라도 잠자리에 들기는 참 애매한 시간이다. 일상 속에서의 저녁 8시 반은 얼마나 분주한가. 아직 저녁 식사 중일 수도 있고 다음 날 출근 준비, 저녁 먹은 뒤 설거지, 누군가에서 무엇인가를 알리는 전화, 뉴스 보기, 아직 귀가하지 않은 식구에 대한 생각들

속초에서 저녁 8시 반이라는 시간에 우리 넷은 숙소에서 별 할 일이 없었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지도, 술을 마실 줄도 모르는 내 친구들. 한 친구는 책을 꺼내 들었고, 한 친구는 세수를 오래오래 했다. 한 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말은 안 해도 각자 ‘지금부터 우리 뭘 하지? 잠자기는 너무 이른데?’라는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벽에 등을 대고 앉아있던 내가 무심코 “우리 요가 할까?”라고 말했다. “요가?” 친구들이 모두 반색을 했다. 그때는 요가를 시작한 지 한참 지난 후였고 요가를 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을 때여서 요가를 하자는 말은 나로서는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다. 내가 요가에 빠져 가끔 요가를 하는 기쁨에 관해서 얘기를 하면 친구들은 ‘또 시작이네’ 하는 표정으로 한창 들어주다가 “시간만 있으면 요가 하면 참 좋을 텐데.‟ 하고 말았다. 그런데 친구들이 여행지의 밤에 내가 요가를 하자는 툭 던진 말에 반응해온 거였다. 나는 뜻하지 않게 그날 밤 친구들에게 요가선생이 되었다. 밤이어서 수면에 좋은 자세라며 아래를 향한 개 자세를 해보자고 했다. 친구들은 “개 자세? 무슨 자세 이름이 그래?” 해서 “이름이 이상하면 아도 무카 스바나아사나라고 불러.”라고 했더니 이번엔 “뭐가 또 부르기가 그렇게 어려워?”라면서도 두 팔을 앞으로 뻗고 머리를 아래로 하고 두 발을 뒤로 뻗어 발바닥은 바닥에 닿게 하고 상체를 바닥을 향해 내리는 동작을 취하게 하자 고요히 따라 했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지 않아 당기고 아프다고 하면서도 정성껏 따라 했다. 매트도 없이 바닥에서 하는 요가였지만 친구들은 내가 “구름다리 자세를 하기 위해 편하게 등을 대고 눕습니다.”라고 하면 세 명이 똑같이 정말 편하게 등을 대고 바닥에 눕고 무릎을 세우고 뒤꿈치를 엉덩이 가까이 당겼다. 턱을 쇄골 쪽으로 당겨주라고 하면 “이렇게 이렇게?” 물으면서도 잘 따라 했다. 그렇게 여행지에서 잠들기에는 너무 이른 저녁 8시 반에 시작한 요가를 10시가 될 때까지 했다. 내일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해보라며 교호흡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복식호흡도 못 하는데 무슨 교호흡이냐고 말하면서도 친구들은 오른손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접고 오른쪽 엄지손가락으로 오른쪽 콧구멍을 막고 왼쪽 콧구멍을 통해 몸 안에 있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 잠자리에서 내 친구들은 정말로 내가 알려준 대로 교호흡을 하고 있었다. 쉽지 않아 보였지만 나는 흥이 나서 아침에 일어나서 꾸준히 하면 좋은 자세를 한번 해보라고 알려주었다. 테이블 자세에서 양손을 세 뼘 앞으로 가져가 가슴과 턱을 바닥에 대고 호흡해보라고 했다. 턱이 닿기 힘들어하는 친구에게는 턱 대신 이마를 바닥에 닿게 해주면서. 한 친구는 바로 그 자세에서 왼팔을 오른쪽 겨드랑이로 넣고 오른팔을 들어 올리는 트위스트까지 거뜬히 해내었다. 그렇게 우리는 속초에서 요가를 했다.

세월이 흐른 후,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일주일 중 사흘은 요가를 하기 위해 스튜디오를 찾는 사람이 되었고, 한 사람은 토요일이면 한 번도 빠짐 없이 인도문화원의 요가 클래스에 나가 요가 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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