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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나라 인도, 두 번째 이야기
신비의 나라 인도, 두 번째 이야기
  • 박지은
  • 승인 2019.08.0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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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나라 인도, 두 번째 이야기

여동구
 

모든 권력의 집합체, 종교
이번 호에서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인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려 한다. 그 전에 잠시 우리나라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삼국시대를 기억할 것이다. 연맹 왕국 단계에서 왕이란 서로 연맹한 여러 부족 중 조금 더 센 부족의 대표일 뿐이다. 그러나 중앙 집권 국가의 등장으로 왕은 여러 제도를 통해 백성을 직접 다스렸고, 부족장들은 독립성을 잃고 관리가 되어 왕의 나라 경영을 도왔다. 고구려, 백제, 신라 이 단계의 국가를 중앙 집권 국가라고 한다.

왕은 자신의 권력을 높이기 위해 몇 가지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종교다. 삼국이 받아들인 종교는 불교였다. 불교는 각기 다른 부족들의 신앙을 뛰어넘어, 자연스럽게 국민의 사상을 통일할 수 있었다. 이렇듯 삼국시대의 종교는 원시적 사회를 벗어나 초 부족적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게 도와주고, 국민의 사상을 통일할 수 있는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서민들을 웃게 한 사상
이제 다시 인도 이야기로 돌아가자. 전기 베다 시대에 주요 세력이 갠지스강 유역으로 옮겨가면서, ‘브라흐마니즘’ 사상은 후기 베다 시대의 ‘슈라마니즘’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과도기에서 인도의 요가 사상은 큰 변화를 겪었다.

본래 브라흐마니즘은 제례 의식의 확립과 그에 따른 제사장 직급인 브라흐만의 확고한 지위 확립을 의미한다. 브라만족은 다른 계급에 대한 자신들의 우월함을 강조해 3대 강령을 표출했다. 베다 계시주의와 브라만 지상주의, 제식 만능주의가 그 내용이다. 브라흐만의 신들은 인간 상호간의 행위 규범이나 윤리 의식은 중시하지 않고 제사 의식에만 몰두했다. 가장 중한 죄는 브라만을 죽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의식이 중요한 브라흐마니즘 사상이 대중적이긴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종래의 사상에서 벗어나, 복잡한 제례 의식을 탈피하고 개인의 수행과 해탈을 강조한 슈라마니즘이 곳곳에 퍼지게 된다. 잦은 전쟁으로 인해 떨어진 크샤트리아의 지위를 높이고 그들의 전쟁을 지원하는 바이샤 계급은, 더 이상 브라흐마니즘 안에서 기를 펼 수 없게 됐다. 게다가 당시 가난한 수드라 계급은 제례 의식을 치를 돈도 없는 데다, 가축으로 농사를 짓는 대신 희생제를 치러야 하는 처지였다. 각 가정이 막대한 피해를 보기 일쑤였다. 바로 이 희생제를 철폐한 슈라마니즘은 서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었다.


철학과 수행을 통합한 신종교
보통 종교의 발달 역사를 살펴보면, 기존의 A라는 종교는 시대가 변할수록 많은 부패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A에 반발해 B라는 대안 종교가 탄생한다. B는 시대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해 시민들과 일부 지배 계층의 환영을 받으며 성장을 거듭한다. 규모가 커지면서 A와 세력다툼을 벌이고, 패한 A는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지게 된다. 이게 기나긴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는 종교의 흐름이다. 그러나 브라흐만교는 달랐다. 기존 종교 A인 브라흐만교는 민중으로부터 배척당하자 자기 반성적 개혁을 일으켰다. 바로 슈라마니즘 사상과 통합돼 새로운형태의 종교가 탄생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힌두교’다.

힌두교에서는 기존의 제례 의식은 축소하고, 기존에 있던 요가의 면모는 더욱 부각했다. 슈라마니즘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수행과 해탈을 강조했다. 사상의 기반에는 브라만, 시바, 비슈누 등 기존의 브라흐만교가 모셨던 신에 대해 더욱 강한 신성의 의미를 부여했다. 즉 힌두교는 사회 유지를 위한 사상적 배경은 기존의 브라흐만교 교리와 철학으로 유지하면서, 슈라마니즘에서 주장한 개인의 수행과 해탈을 ‘요가’를 통한 수행론으로 통합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통합 과정에서 브라흐마니즘이나 슈나마니즘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민간신앙의 요소들까지 흡수됐다. 기존의 브라흐마니즘은 자기 반성적 개혁을 거쳐 민중들에게 한 발 다가가는 계기를 만들었고, 여러 신도 힌두교 신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로써 힌두교는 사회 통합과 통치에 있어 더욱 유용하게 이끌어나가는 발판이 되었다. 종교는 이렇듯 백성을하나로 만드는 큰 역할을 한다. 아마 인도에 종교가 큰 힘을 발휘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품은 인도
아직 인도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진 못했지만, 세계사에서 봤을 때도 인도는 아주 큰 존재감을 갖는다. 인도의 역사는 비단 인도인의 민족사만이라 할 수 없다. 동서양의 다양한 이민족들의 문화가 함께 통일과 조화를 이룬 독특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여러 왕조가 난립하던 혼란기(B.C. 2세기~A.D. 3세기) 속,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던 쿠샨 왕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쿠샨 왕조는 기존의 그리스가 지배하던 인도의 서북부 지역을 탈환하고 지배권을 되찾아왔다. 이로써 그리스 문화가 인도로 유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인더스강 하구에서 힌두쿠시산맥 지역까지 차지함으로써 홍해와 지중해 세계, 인도 세계가 연결되는 거대한 해상 및 육상 교역로를 장악했다. 인도가 동서 문화의 융합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의 융합은 훗날 미술, 건축,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일어나게 되었고, 종교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인도는 아대륙(亞大陸)으로 불리는 넓은 영토, 다양한 종교와 종족 그리고 언어와 관습을 지닌 나라이다. 초월적인가 하면 지극히 세속적이고, 금욕적인가 하면 에로틱하고, 신비로운가 하면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렇게 상반된 특성들이 발견되는 나라가 바로 인도다. 이번 달 제자들과 함께 인도로 수련을 떠난다. 다녀오면서 어떤 이야기를 가져올지, 이번에도 기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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