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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잊어버린 새벽 호흡
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잊어버린 새벽 호흡
  • 박지은
  • 승인 2019.07.2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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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잊어버린 새벽 호흡

신경숙 작가

 

얼마 전, 뜻밖에 잠실에 있는 아쿠아리움에 가게 되었다. 아쿠아리움이란 장소는 내게 매번 기이한 느낌을 준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데도 막상 가게 되면 나도 모르게 물고기들을 보는 데 몰두해서 문득 ‘내가 아쿠아리움이란 장소를 좋아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잠실의 아쿠아리움에서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사방에서 들리는 중국어로 보아 중국인 관람객들이 꽤 많았고 어린이들이 단체 관람을 와서 소란스럽고 산만했는데 나도 모르게 열심히 아쿠아리움의 물고기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물범이나 바다사자 같은 커다란 동물들의 유영도 멋지지만, 실처럼 가느다란 치어들이 한곳으로 몰려다니는 움직임을 보는 것도 재미났다. 덕분에 깨끗한 물에 사는 대표적인 물고기인 은어의 몸에서 수박 향이 난다는 문장을 읽기도 했는데 ‘은어에게서 수박 향이?’ 깜짝 놀라기도 하고 ‘벨루가’라는 러시아 고래가 바다에 살지만 사람처럼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것에 더 놀라기도 하면서 한참이나 시간을 보냈다. 벨루가는 러시아 말로 ‘하얗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태어날 때는 회색으로 태어나는데 멜라닌 색소 결핍으로 성장하면서 하얀색으로 변한다고. 사람처럼 임신 기간 동안 탯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하고 출산 후에는 젖을 먹여 기른다는 벨루가에겐 탯줄을 끊은 자국으로 배꼽이 있었다. 그러다가 가오리를 보게 되었다. 시장 생선가게에서나 보던 가오리가(종이 다른 걸까? 아쿠아리움의 가오리들은 크기가 보통 책상만 했다) 아쿠아리움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가오리들은 접었다 폈다 자유자재로 몸을 놀리며 멋지게 헤엄치고 다녔다. 어찌나 멋지게 유영을 하는지 나는 가오리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족관에 갇혀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갇혀있는 건 나이고 물속의 가오리들은 자유로워 보였다. 수족관 터널을 지나게 되어 머리 위가 수족관이 되었는데 무심코 올려다보니 널따란 가오리 한 마리가 철퍼덕 엎드려서 숨을 쉬고 있었다. 어쩌면 자고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 그렇게 크고 살아있는 가오리의 넓은 하얀 배를 그토록 가까이에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가오리는 일곱 개나 여덟 개쯤 되는 구멍으로 규칙적인 숨을 내쉬는데 분명 복식호흡이었다. 처음에는 무심코 올려다보다가 가오리의 숨을 한참 주시했다. 너무나 규칙적이고 안정적이고 기운찬 가오리가 내쉬고 들이쉬는 숨을 보자 내가 그만둔 새벽 호흡 시간이 생각나서였다.

숨 이야기를 해보자. 요가를 하기 전까지는 내가 내쉬거나 들이쉬는 숨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이 없었다. 호흡을 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해서 생명을 지니고 있는 한은 다들 비슷한 호흡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요가를 시작하고 난 뒤에 요가 선생님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 중의 하나가 호흡에 관한 것이었다. 호흡이 그렇게 중요한가?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지만, 곧 알았다.

 

가오리의 숨을 한참 주시했다. 너무나 규칙적이고
안정적이고 기운찬 가오리가 내쉬고 들이쉬는 숨을 보자
내가 그만둔 새벽 호흡 시간이 생각나서였다.

 

인간이 어떤 동작을 하게 될 때면 참 어이없게도 맨 먼저 숨을 참거나 쉬지 않는다는 것을. 긴장하거나 어떤 상황을 지켜보거나 어이없는 일을 당하면 인간은 먼저 숨을 죽인다는 것을. 그래서일 것이다. 수많은 소설 속의 문장에도 숨에 관한 묘사가 많다. 숨을 고른다, 숨을 내뱉었다, 숨을 죽인다,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

인간의 모든 상태는 숨에 비교해 표현할 수 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숨을 쉬는 일이고 숨이 끊긴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니까. 생각해보면 모든 수행법은 숨 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게 첫 번째이다. 고대 인도에서도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것은 숨이라고 여겨 호흡의 수련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데도 그렇게 숨의 상태에 무심했다니.

요가를 시작하고 난 후 나는 내 숨이 깊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숨이 그렇듯이 나 또한 흉식호흡을 하고 있어서였다. 요가를 시작하자 요가 선생님은 요가의 가장 기본적인 호흡은 복식호흡이라 일러주며 복식호흡 연습을 시켰다. 복식호흡은 산소를 몸속에 전달해 쌓여있는 노폐물, 거기다 지방까지 없애고 몸의 기운을 안정시키는 호흡이라는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렇게 중요한 호흡을 마흔이 되도록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억울한 느낌까지 들었다. 들이쉴 때 배가 나오고 내쉴 때 배가 등 쪽으로 붙게 하는 것이 복식호흡의 기본이다. 말로 들으면 별것 아닐 것 같은 이 복식호흡이 그동안 흉식호흡으로 익숙해진 상태에서 잘 되지가 않았다. 숨을 그냥 코로 내쉬는 것쯤으로 알고있다가 들이쉴 때는 배를 나오게 하고 호흡을 참고 있다가 내쉴 때는 배가 등 쪽으로 붙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숨을 쉬게 되자 처음엔 되려 숨을 방해하곤 했다. 거기다 들이마실 때는 괄약근을 조이고 내쉴 때는 풀어주는 것까지 동시에 이루어지는 숨쉬기, 복식호흡에 집중하다 보니 내 배가 얼마만큼 부풀어 오르는지 그리고 얼마만큼 등 쪽에 닿을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복식호흡을 반복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내 숨이 조각 숨이 아니라 커다란 덩어리 숨같이 느껴지는 묘한 희열이 있었다. 크게 들이쉴 때 몸이 부풀어 오르며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면 내쉴 때는 몸속에 들러붙어 있는 모든 것을 다 뱉어내는 느낌이었다. 복식호흡이 자연스럽게 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 복식호흡이 나의 것으로 익숙해지는 과정에서는 잘하고 싶으나 되지 않던 아사나 동작들이 같이 깊어지고 부드러워지는 것을 실감했다. 어떤 동작을 길게 유지하는 것 또한 호흡의 문제라는 것도 동시에 깨달았다. 그래서 요가 선생님 어느 분이나 숨을 멈추면 안됩니다, 숨을 쉬세요, 라는 말을 반복한다는 것도.

숨을 제대로 쉬지 않으면 어느 동작도 제대로 유지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요가를 시작하면서 숨쉬기보다 활 자세 같은 동작을 먼저 해보고 잘되지 않으니 실망을 했다. ‘이렇게 몸이 굳어 요가를 계속할 수 있을까?’ 싶은 적도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요가를 해야 되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나는 지금도 두 손바닥을 등 뒤로 마주 대는 동작이 되지 않는다. 항상 앞으로 어느 정도 숙인 자세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앉아있다 보니 후굴 자세를 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고개를 뒤로 젖히지 못할 만큼 목 뒤의 통증이 느껴질 때도 있고 등 뒤로 손바닥이 맞닿는 것 같은 동작을 할 때는 어깨와 손목에 몰려든 통증이 심해 잠시도 유지를 못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기다리면 어느덧 마음이 통증으로부터 벗어나며 어느 정도는 유지가 된다.

흔들리고 밀리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모든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숨쉬기이다. 순간적인 떨림뿐 아니라 인요가처럼 한 동작을 가지고 3분, 5분씩 깊이 들어가 유지할 때도 가장 필요한 건 숨쉬기이다. 어느 날 문득 요가에서 호흡은 소설에서 문장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소재의 소설 쓰기라고 해도 문장이 흔들리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아무리 멋진 아사나라고 해도 숨이 흔들리면 그 아사나를 완성시킬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소설은 결국 문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시작부터 끝까지 한 문장 한 문장을 벽돌처럼 쌓으며 나아가야 소설이 완성된다. 앞 문장에 의해서 뒷 문장이 이루어지듯 숨쉬기도 들이쉬기가 있어야 내쉬기도 이루어진다. 복식호흡이 몸에 배게 익혀나가는 일은 숨쉬기가 요가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뇌를 정화시켜주는 정뇌 호흡, 엄지 손가락으로 한쪽 콧구멍을 막고 반대쪽 코로 숨을 5초쯤 들이마신 후 다시 반대쪽 코로 5초간 뱉어내는 교호흡, 아주 급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풀무 호흡을 차례차례 익혔다. 요가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선생님에 따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조금씩 다르긴 했으나 어느 선생님이든 호흡의 중요성은 일치했다. 고질적인 두통이 시작될 기미를 보이면 나도 모르게 정뇌 호흡을 하기도 한다. 정뇌 호흡을 하고 나면 머리가 어느 정도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요가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마 숨쉬기는 그냥 살아가는 데 자연스러운 일로만 여기는 삶이 이어졌을 것이다. 호흡을 매우 중요시 하는 선생님과 수업을 3년쯤 이어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는 요가 수업의 시작과 끝이 호흡이었다. 그때 참 내가 건강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그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복식호흡부터 시작해 정뇌 호흡과, 교호흡 그리고 풀무호흡을 20분씩 매일 했었다. 내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은 주로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였는데 모두가 잠이 들어있는 것 같은 그 시간에 홀로 바르게 앉아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다보면 내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만선을 위한 출항을 앞두고 있는 기분이 되곤 했다. 아쿠아리움의 큰 가오리의 숨쉬기를 보기 전까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던 그 새벽 호흡 시간의 그 신선한 충만감. 내가 왜 그걸 그만두게 되었는지 기억이 희미한 나는 가오리 앞에서 후회를 했다. 시간을 어떤 사람과 함께 보내느냐는 그렇게 중요하다. 만약 그 선생님과 계속 요가를 같이 했다면 나는 아침호흡을 계속 하고 있었을텐데…. 그 선생님이 요가원을 떠나고도 한동안 나의 아침호흡은 이루어졌는데 언제 그만두었을까. 아마도 집을 한동안 떠나게 되는 일이 발생했고 그러면서 새벽 호흡이 멀어졌는데 다시 복구하질 못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계속해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접고 다시 나의 나빠진 숨을 정비해보기로 한다. 숨이 나빠지면서 나의 아사나 동작들도 후퇴했다는 깨달음. 새벽 호흡을 되찾아 다시 그 신선한 충만감에 닿아보기로 한다.

 

요가에서 호흡은 소설에서 문장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소재의 소설 쓰기라고 해도
문장이 흔들리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 자세한 내용은 〈요가저널〉 2017년 7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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