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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나라 인도, 첫 번째 이야기
신비의 나라 인도, 첫 번째 이야기
  • 박지은
  • 승인 2019.07.28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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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나라 인도, 첫 번째 이야기

여동구

 

요가의 종주국 인도
인도의 역사는 방대하다. 눈에 띄게 발전한 천문과학과 수학, 세계를 아우르는 비즈니스 스킬, 갖가지 인도인들 고유의 철학, 카스트 제도 잔재의 모순은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너무도 낯선 모습이다. 그만큼 역사의 곡절이 많고, 그러다 보니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다. 인도라는 나라를 떠올려 보자. 대부분 ‘더럽다.’, ‘위험하다.’, ‘무섭다.’ 등 긍정적인 단어보다 부정적인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인도에서 10년 넘게 요가를 수련해 온 나로서는 그보단 좀 다른 면을 알려주고 싶다. 방대한 인도 역사가 아닌, 요가를 중심으로 한 인도 역사에 대해. 요가인으로서 이를 아는 건 매우 중요하다.


고대 문명 속의 요가
인도의 역사는 멀리 구석기 시대까지 올라간다. 물론 인도인들은 브라흐마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할 때부터 인도에 사람이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인도의 역사는 신도시라 할 수 있는 하라파와 모헨조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즉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부터다. 석기시대를 거쳐 청동기 문명을 이룩한 드라비다족을 중심으로 여러군소 민족들이 인더스 문명을 이룩했다. 인도라는 이름은 바로 이 인더스 강에서 유래했다.

인더스 강은 인도인들에게 ‘신두’라고 불렸는데, 그리스와 페르시아로 넘어가며 각각 인디아, 힌두라는 이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가 힌두교의 생활양식, 문화라고 알고 있는 ‘힌두이즘’이란 단어는 사실 인더스 강 유역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 풍습을 지칭하는 말이다. 요가의 원형은 이 드라비다족의 인더스 문명에서부터 존재해 왔다. 요가 수련자의 모습을 담아낸 인더스 문명의 벽화나 토기 인형을 보면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신화 속에서 요가의 모습을 보면 ‘고행’과 ‘자기 수행’ 측면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침략을 거쳐 신비의 나라 ‘인도’가 되기까지…
인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아리아인의 침입에 대해 빼놓을 수가 없다. 아리아인의 기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현대에서는 그들이 원래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 남부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걸쳐 살았던 민족이라고 말한다. 흰 피부에 체격이 크고 긴 머리를 가졌으며,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족이었다. 후에 인도 땅에 들어와 농경 생활을 하면서 정착민족으로 변해갔다. 아리아인들 중 유럽 쪽으로 이동한 민족은 그리스인, 라틴인, 켈트족 그리고 현재 독일 민족을 구성하고 있는 튜튼족 혹은 게르만족의 조상이다. 또 다른 집단은 남쪽으로 이동해 코카서스와 이란을 거쳐 중동 지방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인도로 이동한 아리아인은 기원전 2000년경 아프가니스탄 지방을 거쳐 서북 인도 지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을 인도 아리아인이라고 말한다.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3000년경에 시작되었고, 아리아인의 인도 침략으로 인해 소멸되었다. 하지만 모헨조다로의 유적을 살펴보면 아리아인의 침입 전에 이미 망조의 길에 접어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홍수와 지진 등으로 인더스 강 주변이 황폐해지면서 생활 조건이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동기 문화를 가진 드라비족의 입장에서 철기 문화를 지닌 아리아인에게 대항할 수는 없었다. 분명 침략으로 뺏은 국가지만,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도 인도는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적으로 독특한 문화를 지닌 신비의 나라가 된 것이 않을까 싶다.

 

신의 섭리 카스트 제도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는 아리아인들과 그렇지 않은 선주민들을 보면서 왜 카스트 제도가 만들어졌는지 금방 이해되지 않는가? 처음엔 피부색만으로 구분 짓는 바르나(varna, 색)의 개념이었다. 후기 베다 사회로 갈수록 직업으로 구분 지으면서 카스트 제도로 정착되었다. 인도인들은 카스트라는 신분 제도를 원래 브라흐마 신이 창조했다고 믿는다. 인도 신화에 브라흐마 신이 자신의 머리에서 사제 계급인 브라만을, 가슴에서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를, 배에서 상인 계급인 바이샤를, 다리에서 노예 계급인 수드라를 만들었다고 나와 있다. 아리아인들은 이 카스트 제도를 통해 선주민들을 다루기가 쉬웠을 것이다. 피지배 계층을 원활하게 통치하기 위해 신분제도에 ‘신성성’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성성은 곧 정당성이다.

결국 카스트 제도는 신의 섭리에 따르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 되었다. 또한, ‘카르마’ 즉 ‘윤회, 업’ 사상을 강조했다. 현세의 신분은 지난 생의 ‘카르마’의 반영이며, 현세의 신분을 받아들이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해야만 다음 생에 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나거나, ‘카르마’의 소멸을 통해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하면서 카스트 제도에 ‘안정성’을 부여하였다. 아리아인은 카스트 제도에 ‘신성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통해 ‘정당성’과 ‘안정성’을 꾀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당연하게 믿고 따르는 인도인들을 무지하다고 느낀다면, 우리네 조상만 봐도 신라시대 골품제도가 심히 엄격해 카스트 제도와 비교 선상에 놓인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종교 속의 요가
오늘날 인도의 대표적인 종교는 힌두교다. 아리아인의 종교는 힌두교의 뿌리가 되는 브라흐만교였다. 그들은 토착민(아리아인의 침입 전 인더스 문명에 거주했던 민족들)의 토속신앙을 흡수해 종교를 하나로 통일시켰다. 보다 원활한 통치와 지배를 하기 위함이었다. 이 과정에서 토속신앙이자 수행 방식인 ‘요가’가 브라흐만교에 흡수되었다. 아리아인은 그들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본래 자신들의 종교와 토속신앙을 한데 엮어서 ‘베다’라는 최초의 경전을 편찬했다. 베다 문화는 인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 문화를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리아인 중심의 베다 문화와 선주민 중심의 인더스 문명의 조화로 이루어진 점 때문이다. 어쨌든 침략 행위로부터 발전된 문화엔 문제도 많겠지만, 그들이 만든 문화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적어도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선. 이번 호에서 다룬 몇 가지 이야기로 인도를 알기란 역부족이다. 다음 호에서 다시 한 번 이야기하려고 한다. 혹시 지금 인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뿐이라면, 인도라는 나라의 요가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다음 호를 기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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