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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제주에서 요가
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제주에서 요가
  • 박지은
  • 승인 2019.05.3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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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제주에서 요가

신경숙 작가

 

몇 년 전, 제주 성산에 ‘플레이스’라는 숙박업소가 생겼다. 객실료도 적당하고 커피도 맛있어 그곳에 자주 묵었다. 객실 동과 동 사이에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공간이 있는데 아무데나 앉아서 그 공간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무엇 하나 예사롭지 않은 게 없다. 드럼통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는데 어느 드럼통도 같은 게 없다. 크기는 같은데 컬러와 문양이 모두 다르다. 누군지 모를 아티스트의 수없이 오간 손길이 이루어놓은 것임이 느껴져 하나하나 살펴보게 된다. 객실 동 한편으론 마치 누가 두고 간 것처럼 낡은 풍금 하나가 운동장 같은 공간에 툭 놓여있기도 하다. 몇십 년 전 초등학교 교실에나 놓여 있었을 것 같은 풍금에는 얼핏 낙서같이 보이는 수많은 선과 글씨들이 쓰여 있는데 한번 시선을 주면 그 알 수 없는 선과 글씨의 뜻을 해독해 보고 싶은 욕구에 그 앞을 떠날 수가 없게 된다. 텅 빈 공간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하릴없이 객실 동과 동 사이를 거닐어 보게 되는 곳이 그곳이다. 괜히 농구대가 놓여 있는 곳으로 막 달려가 점프를 해보게도 된다.

내가 제주에 가게 되면 종달리라는 마을에서 지내게 된 이후에도 나는 가능하면 아침마다 플레이스에 렌트한 차를 운전해 가곤 한다. 아침 8시 반에서 9시 20분까지 50분 동안 운영되는 요가 클래스가 생겨서다. 초보자를 위한 요가 클래스로 여행자들 중심이어서 매일매일 오는 사람도 다르고 숫자도 다르다. 어느 때는 네 사람이 모일 때도 있는데 어느 때는 스무 명도 넘게 모인다. 어딘가로 이동할 때면 ‘요가 클래스가 어디에 있나?’를 살펴보는 게 나의 일이 된 지가 오래되었는데 몇 년 전만 해도 제주에서 마땅히 요가를 할 만한 데가 없었다. 제주 시내에 나가면 되었지만 그곳까지는 종달리 마을에서 자동차로만 한 시간을 가야 하니…

 

아쉬운 대로 제주에서는 아침에 일어나 숙소의 침대 아래서 태양 경배 자세를 몇 세트 하는 걸로 요가를 대신하곤 했는데 플레이스가 생긴 것이다. 성산 근처(종달리는 제주시에 속하지만, 서귀포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어서 종달리 해안도로를 지나다 보면 ‘여기서부터는 서귀포입니다’라는 안내판이 나오고 곧 성산과 만나진다)에서 요가를 할 수 있는 곳을 검색하다가 발견했을 때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조개 속에 박혀 있는 진주를 발견한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요가를 혼자 할 때 더 집중된다고 하고 요가 클래스에 갈 상황이 못 되면 유튜브를 틀어놓고 따라 해도 잘 된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처음부터 요가를 요가 스튜디오에서 시작해서 그런 것인지 나는 요가를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좋다. 매트를 나란히 깔아놓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함께 해야 집중도 더 잘된다. 요가를 같이 할 때는 함께 하는 사람들의 어떤 기운들이 내게 전달되는 느낌도 받는다. 사람이 참 좋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대부분 요가를 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나는 나날이 요가 자세가 더 후퇴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데도 요가 클래스에서 요가를 마치고 나면 좋은 기운을 받고 어딘가로 출발하는 느낌을 받는다. 플레이스의 요가 클래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행자들이 객실 예약을 할 때 같이 하는 경우도 있고 또 당일에 요가 클래스가 진행되는 곳에서 바로 예약을 하기도 하는 거 같은데 나는 내가 열흘을 묵으면 열흘, 이주일을 묵으면 이주일을 예약해 두었다. 가끔 가지 못하는 날도 있고 열흘을 예약했는데 일주일 만에 서울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어 예약이 소용없게 되는 경우도 발생했지만 그렇게라도 제주에서 사람들과 요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사흘 전 제주에 왔더니 수국이 피려고 준비 중이다. 봉오리가 파랗게 맺혀 있다. 햇볕을 잘 받은 쪽의 수국 봉오리들은 크고 벌써 꽃잎에 붉은 기운이 돌고 있다. 문득 떠나온 서울 집이 떠오른다. 대문 옆의 목수국이 막 피어서 찬란했는데 지난 일요일 내내 내린 비를 맞고는 바닥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직 질 때가 아니라 지지도 못하고 비의 무게를 견디지도 못한 채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모습이 어째 나를 보고 있는 듯해서 빗방울을 털어주기도 했는데 아마 돌아가면 그때는 다 졌을 것이다. 수국이 피려고 하는 길을 지나서 이번에도 제주에 오자마자 다음날 플레이스로 가서 아침 요가를 하고 열흘 치를 미리 예약을 하는데 스태프가 제주 주민이냐고 물었다. 자주 바뀌는 스태프보다 내가 더 많이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왜 묻느냐 하니 주민이면 십 퍼센트를 할인해 준다고. 갑자기 마음이 고요해졌다. ‘십 퍼센트 할인? 주민이라고 할까?’ 찰나에 갈등이 스쳐 지나갔다. 주민은 아닌데 자주 온다고 대답했다. 애매한 내 대답에 스태프가 잠깐 내 얼굴을 보더니 그러니까 주민은 아닌 거죠? 다시 물어서 예, 하며 웃었다. 제주에 이렇게 자주 올 거면 아예 주소를 옮겨? 그러면 우도도 그냥 갈 수 있는데. 비자림도 티켓 안 끊고 들어갈 수 있고… 나는 왜 이런 사소한 일에 자주 흔들리는지. 열흘을 채우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갈지도 모르면서.

맨 처음 제주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나는 연재를 앞두고 있었고 계간지에 단편을 두 편이나 의뢰를 받아놓고 있었던 때다. 지금이야 단편 두 편을 한 계절에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조절을 했을 텐데 그때는 그냥 작품을 쓸 기회가 온 것이 기쁘기만 한 때였다. 혼자 지내고 있었을 때인데도 집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가방을 꾸려 제주도라는 곳에 처음 발을 디뎠다. 지금은 만날 수도 없게 된 친구가 동반해주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잘 되던 때가 아니라 숙소를 정하지도 않고 떠나 내가 어디서 지내게 될지 나도 모른 채. 젊음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정해지지 않은 것이 두렵지 않은 것. 어떤 위험한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도 턱 앞으로 나가보는 것.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되던 때가 아니라

숙소를 정하지도 않고 떠나 내가 어디서 지내게 될지 나도 모른 채.

젊음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정해지지 않은 것이 두렵지 않은 것.

어떤 위험한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도 앞으로 나가보는 것.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해안도로를 돌다가 성산에서 내렸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제성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관에서 하루를 잤다. 그리고 다음날 막 개장하고 있는 일출봉 호텔이라는 곳을 발견했고 그곳에 투숙을 정했다. 바람이 불면 일출봉 아래의 갈대들이 한쪽으로 쓸려 눕는 것이 훤히 내다 보이는 게 좋았다. 작은 테라스도 있었다. 그리고 매일 청소는 물론이고 새 수건과 새 침대보를 깔아주는 것도 좋았다. 나는 그곳을 숙소로 정하고 친구는 떠났다. 작은 호텔이었으나 마당이 넓었고 호텔 양편으로 당근밭이 펼쳐졌다. 당근밭 건너에는 KBS 송신탑이 보였다. 나는 그곳에서 <깊은 숨을 쉴 때마다>라는 중편과 <전설〉이라는 단편 그리고 연재를 시작하는 〈외딴방〉 연재 1회분을 썼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지금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을 그곳에서 두 달 지내는 사이에 해냈다. 혼자 고립되어 미친 듯이 썼다. 배고프면 점심 식당으로 정해둔 집에 가서 밥을 먹고(다른 식당엔 가지도 않았다. 식당 고르느라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까웠다) 돌아오면서 저녁으로 대신 먹을 우유나 빵을 사서 들어왔다. 밤에도 다른 창으로 포구의 오징어배의 전구들이 노랗게 반짝이는 걸 내다보는 것 외에는 호텔의 화장대를 책상 삼아 거기에 엎드려 글을 썼다. 눈동자가 빨개지고 혼미해질 때까지 쓰다가 쓰러지듯 잤고, 아침엔 잠깐 로비로 나가서 내가 건재하다는 것(내가 안 보이면 자꾸 문을 두드렸다. 그때만 해도 여자 혼자 장기투숙하는 것이 흔할 때가 아니었다)을 보여주기 위해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올라와서 점심 먹으러 나갈 때까지 또 썼다. 그걸 잘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왜 그런 무리를 했는지를 자주 생각한다. 그때 어떤 욕망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는지를. 중편 <깊은 숨을 쉴 때마다>는 나에게 현대 문학상을 안겨주었고 장편 <외딴방>은 그렇게 시작해서 일 년 동안 연재를 마친 후 다음 해에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단편 <전설>은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후에 고통스러운 논란에 빠지게 해 뼈까지 부서지는 듯한 상처를 입혔다. 자식에게 당하는 부모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빌미를 내가 제공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렇게 앞뒤를 살피지 않고 미친 듯이 글을 썼을까. 조금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피면 되는 일이었는데. 사실은 그때 죽을 목숨이었는데 휘몰아치느라 지나가서 목숨을 부지한 것일까? 무엇에 홀려서 그런 부주의를 눈치도 못 챈 채 지나쳐버렸을까. 젊은 날이나 지금이나 낯선 곳 계단이나 아무 바닷가에 버려진 책이 한 권 있는데 비바람에 표지도 뜯기고 저자 이름이 나와 있는 장도 뜯어져 나가 제목도 출판사도 알 수 없으나 남아있는 몇 페이지를 따라 읽으면 아, 이건 신경숙이 작품이네, 알아볼 수 있는 문체를 갖는 작가로 남고 싶었으면서 정작 나 자신을 감시하지 못하고 나를 쓰는 일에 몰아세웠다.

제주를 처음 찾은 지 21년이 지난 후 피폐해진 마음으로 젊은 날에 글을 쓰던 마을을 찾아가 봤다. 그때 막 개장되었던 그 호텔의 그 룸에 가서 대체 내가 그곳에 가면 그때 내가 무슨 마음으로 살고 있었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곳은 그때의 그곳이 아니었다. 실마리를 이어볼 수도 없게 달라져 있어서 이 골목 저 골목들을 들어갔다가 나오고 다시 들어갔다 나오기를 한나절을 했어도 그 호텔을 찾지 못했다. 내가 눈이 벌게질 때까지 글을 썼던 그 호텔의 그 룸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308호인지 306호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그 호텔만 찾으면 그 룸이 어딘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때는 그 룸에 내 이름이 붙어 있었다고도 했으니. 하지만 당근밭도 사라지고 새 길들은 너무 많이 생겨 내가 허겁지겁 점심을 먹던 식당도 찾을 수가 없었다. KBS 송신탑만 남아 있어 그쪽을 향해 걸었다. 여기쯤일까. 그곳엔 새로운 펜션이 들어서 있었다.

다시 4년이 더 흘러 제주를 찾은 지 25년 후에 나는 일출봉이 내다보이는 제주의 플레이스에 와서 요가를 한다. 15년을 해왔으나 오늘은 초보자 클래스에 들어가 함께 아기 자세를 취한다. 나의 불균형을 수정해 보려고 어깨를 뒤로 보내고 엎드려 본다.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은 없다는 게 시간의 공평함이다. 깊은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살아가는 동안 마음이 아프고 고통받을 것이나 마음의 균형이 손바닥만큼이라도 유지되길 간절히 바라 본다. 모두 여행자들이지만 오늘 여기 이렇게 함께 있어서 좋다.

 

나의 불균형을 수정해보려고 어깨를 뒤로 보내고 엎드려본다.

돌아갈 있는 시간은 없다는시간의 공평함이다.

살아가는 동안 마음이 아프고 고통받을 것이나 마음의 균형이

손바닥만큼이라도 유지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서울에서 살다가 어느 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제주에 내려와 요가 선생이 되었다는 모르는 선생님의 낮은 음성을 귀기울여 듣는다. 새로 얻은 목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의 숨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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