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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가 어려운 누군가에게 자연이 남긴 지혜
포기가 어려운 누군가에게 자연이 남긴 지혜
  • 박지은
  • 승인 2019.06.04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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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가 어려운 누군가에게

자연이 남긴 지혜

김이현 발행인

 

오랜 시간 머문 요가원에서 새로운 곳으로 이전을 했습니다. 태국이나 인도, 발리에 가면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이용해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꾸며진 요가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 그와 비슷한 요가원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운 좋게 홍대 한복판에 그런 장소를 마련했습니다. 늘 꿈만 꾸던 그곳에서 지금 이렇게 글을 씁니다. 이곳은 큰 나무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바람이 책장을 넘겨줍니다. 향긋한 차 한잔을 즐길 수 있는 향기로운 곳입니다.

요가원에 들어오는 길에 돌담이 있는데, 꽃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여’ 김종건(서예가) 선생님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선생님은 힌두교의 성전 <바가바드 기타>의 한 구절을 그 위에 적으셨습니다. ‘기계적인 훈련보다는 지혜의 탐구가 낫고 지혜의 탐구보다는 명상에 몰입하는 것이 나으며 명상에 몰입하는 것보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포기가 훨씬 낫다.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위하는 자는 즉시 평화를 얻는다(12장 12절).’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구절입니다.

기계적인 훈련은 대표적으로 우리가 매일 하는 요가 동작 ‘아사나’가 있습니다. 아사나를 매일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우리 요기들의 밥과 같습니다. 밥은 일종의 에너지이고 힘입니다. 매일 먹어야 그날 살아갈 수 있는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아사나를 하고 난 후엔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기도 합니다. 육체적으로는 건강함과 강인함도 만들어 줍니다. 요가 수련을 하는 우리들이 아사나를 매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기계적인 훈련보다는 지혜의 탐구가 낫다고 했습니다. 지혜란, 내가 나를 아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가고 깨우치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길은 너무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많은 수련과 훈련이 필요하고, 요가 경전을 공부하며 스승의 말을 들어도 쉽지 않습니다. 알아도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명상을 하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명상은 집중이자 집중이 이어지는 것인데, 몸과 마음을 한결 차분하게 유지해 줍니다. 명상의 끝이 결국 지혜 탐구의 끝이라면 이 또한 우리들에게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길입니다. 명상에 몰입하는 것보다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포기하는 자가 즉시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깊은 산속이나 동굴로 들어가지 않아도, 세상에 살면서 궁극적인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사는 것은 쉬울까요? 어쩌면 가장 어려운 것은 포기가 아닐까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 보면 완전한 포기자이자 자유인인 조르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이란 자유’라고 정의 내리는 그를 보면 우리가 왜 순간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이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2009) 394쪽 발췌

 

조르바는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래서 많은 좌절과 실수와 실패가 있어도 몰입하며 혼자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혼자 바로 서서 상대에게 몰입하고 매 순간 새로운 춤인 듯 감탄하며 나만의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한 춤이 된다고 합니다. 한때 가장 높았던 빌딩 위에 올라가서 이번 달 요가저널 코리아 표지 사진을 찍었습니다. 도시는 정글 같다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높은 곳에서 바라본 도시는 정말 정글 같았습니다. 빽빽한 건물 사이로 차들과 사람들이 쉴 새 없이 흘러가는 모습이 분주했습니다. 그런 곳에 서면 누구든 두 가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하나는 인간은 참 미약한 존재라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은 정말 위대하다는 것. 어느 쪽이든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우리의 생각일 것입니다. 조르바는 세상에 살면서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가 이 높은 곳에 올라왔다면 분명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세상은 간단한 거라니까요. 몇 번이나 이야기합니까? 간단한 걸 자꾸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니까요? 가녀린 나비의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습니다. 오늘에서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안달 내지도 말고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2009) 178쪽 인용

 

어쩌면 집착하지 않는 포기란, 이런 게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가녀린 나비의 시체만큼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습니다.

오늘에서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 얼마나

죄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안달 내지도 말고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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