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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전통에 따른 여섯 가지 요가의 종류
힌두교 전통에 따른 여섯 가지 요가의 종류
  • 신미진
  • 승인 2019.04.0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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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는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스승과 제자, 또 유파 간의 대립이나 교류 등으로 인해 만들어진 다양한 유파들이 있다. 그 세세한 종류를 따진다면 매우 방대하지만 일단 수행 방법의 원류인 힌두교의 전통에서는 요가를 여섯 가지로 구분한다. 라자 요가, 하타 요가, 즈나나 요가, 박티 요가, 카르마 요가, 만트라 요가가 그것이다. 그 외에도 실천의 방법에 따라서 나다요가, 쿤달리니요가 등의 명칭들이 있으나, 일단은 크게 위의 여섯 가지를 전통 요가의 종류로 구분하며 나머지는 유파 간의 실천 방법론에 따라 달리 부른다. 이번 호에는 요가의 종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힌두교 전통에 따른

여섯 가지 요가의 종류

여동구

 

■ 첫 번째, 카르마 요가

사회에 참여하여 봉사하려는 자기희생의 요가

고전 요가의 제식주의적 신에의 헌신과 희생제에서 벗어나 바른 앎(깨달음: 이해)을 통한 요가로 발전해온 후에 바른 앎보다는 바른 행(이기적만이 아닌 이타행과 이전적행)을 강조한 요가이며, 카르마 요가를 강조한 경전으로 <바가바드기타>가 있다. 카르마는 업(業)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업의 소멸과 윤회를 위하여 행위가 강조되는 것이고, 바른 행은 업의 소멸과 더 나은 존재로의 윤회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이다. 이 업과 윤회에 대한 견해는 힌두교와 불교가 다르다. 불교는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반면 힌두교에서는 윤회의 고리는 끊을 수 없으며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부메랑 법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도 있다.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다. 모든 일의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결과에 대한 원인을 모르면 결과를 인정할 수 없어 불행해진다. 하지만 원인을 알면 인정할 수 있게 되고, 인정하면 불행하지 않게 된다.

 

■ 두 번째, 박티 요가

신에 대한 헌신과 사랑의 요가

우주, 자연, 신, 절대자의 원리나 섭리와 법칙, 질서에 복종하고 헌신하는 길을 통해 구원받으며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요가이다. 자신의 힘과 노력 혹은 어떤 행위로는 구원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신의 은총이나 계시, 사랑이 있어야 깨달음이나 구원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에 대한 의존적 종교관은 잘못하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무의미하다는 섣부른 결론을 낼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사람은 힘들면 의지가 약해진다. 그러면 신을 찾게 되고 종교에 의지하게 된다. 그 종교가 어떤 종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려움 속에서 절실해지면 종교가 잘 전파된다. 무조건적인 믿음은 위험하지만, 의지가 약할 때는 믿음을 가질 무언가가 있으면 큰 힘이 될 수 있다. 예로 시련을 당했거나 큰 어려움에 빠지면 보통 술, 담배, 마약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이 가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위안이 된다면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

 

■ 세 번째, 즈나나 요가

분별심을 일으켜 자신의 에고를 타파하려는 지식의 요가

배움, 지식, 지혜의 요가, 무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진아(眞我)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치는 요가이다. 인간의 고통은 무지와 무명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정지(正知, 바른 앎: 바른 이해)를 통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도달하는 요가이며, 과학적, 사상적, 철학적 요가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물욕에 고통받게 된다. 올바른 앎과 내면의 성찰을 통해 우리는 욕심을 버릴 수 있다. 물질은 결국 변하고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욕심을 버리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여기, 농사를 처음 지어보는 남자가 있다. 이론적인 지식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경험이 부족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경험이 많은 농부는 실패할 확률이 낮다. 많은 경험을 통한 지혜가 생겨 지식과 합쳐지면 겸손해질 수 있고 자만심에 빠지지 않게 된다. 사실 이 지식의 요가는 자칫 스스로를 우월한 존재로 착각하면 사이비로 빠지기 쉽다. 이것이 즈나나 요가의 오류이다. 머릿속 이론과 상상력으로 풀어가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항상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주의해야 한다.

 

■ 네 번째, 만트라 요가

소리로 심신을 정화시키는 요가

다양한 형태의 소리의 힘을 이용하여 심신을 정화시키는 요가이다. 꼭 요가가 아니더라도 세계 모든 나라, 모든 민족마다 전통적으로 소리의 힘을 이용한 예식, 제례 의식 등이 자연스럽게 발전하고 활용되어왔다. 예를 들면, 교회나 성당에서의 찬송가나 불교에서의 염불이나 종소리, 북소리, 요령 소리, 풍경 소리, 목탁 소리, 그리고 유교에서의 제사 때 축문 읽는 소리, 샤머니즘에서의 주술 또는 상여 나갈 때의 소리, 살풀이나 한풀이 시의 노래나 소리 등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소리나 음율(멜로디)의 힘과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선진국에서는 음악 치료를 의학 분야에 과학적으로 체계화시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소리에는 에너지가 있다. 처음 듣는 외국어로 욕을 해도 욕은 알아듣기 쉽다. 파장 때문이다. 좋은 소리를 하면 좋은 파장이 나가게 되고 돌아올 때 좋은 소리로 좋은 파장이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만트라 요가는 카르마 요가와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다.

 

■ 다섯 번째, 라자 요가

응념, 정려, 삼매에 관한 요가로 정신 요가

명상 요가로써 마음의 평온을 찾고 지혜를 얻으며 해탈하는 경지를 추구한다. ‘라자’라는 말은 ‘왕’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모든 요가의 궁극적인 종점은 라자 요가로 귀결된다. 선, 참선, 선나, 정려, 사유수, 젠 등 ‘명상라자 요가’라는 말은 15세기 <하타 요가 프라디피카>의 저자인 스와트마라마가 아사나와 호흡법, 신체 정화법 등을 수행법으로 하는 하타 요가와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에 기반을 둔 명상요가를 구분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 요즘에는 명상을 수행법으로 하는 요가를 일반적으로 ‘고전 요가’ 또는 ‘라자 요가’라고 한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에서 홀로 조용하게 개념들을 탐색해가는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 역할, 그리고 책임의 상호관계를 깨닫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이해는 개인의 영적인 개발을 위해 매우 중요하며, 정의, 자유, 존중, 사람 등의 가치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줄 것이다.

 

■ 여섯 번째, 하타 요가

아사나와 호흡법에 관한 요가로 신체적 움직임에 포커스를 맞춰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수련의 요가

몸가짐을 다스리고 숨쉬기를 훈련하며 식이요법과 단식법, 정화법으로 인간의 본성적 생명력을 회복하는 요가이다. 고전 요가는 깨달음을 향한 요가였다면 중세 요가는 카르마가 남지 않는 바른 선행의 요가였다. 바른 앎과 바른 행을 위한 수련의 일환으로 하타 요가가 발전해왔으며, 라자 요가를 위한 필수적인 준비 조건의 궁극적으로 완전한 육체를 수단으로 해탈하고자 한다. 하타 요가는 육체적인 수련인 아사나와 호흡 수련인 프라나야마를 바탕으로 하여 반다를 더한 무드라라는 수행법으로 구성되어있다. 현대에 와서 건강법과 미용법으로 활용되면서 20세기에 와서는 하타 요가를 통해서 전 세계에 요가가 활발하게 보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많은 스포츠와 무술, 체조, 무용 등은 나라마다 다양하게 응용되고 변화된 하타 요가의 모습들이다.

 

라자 요가와 하타 요가의 관계

파탄잘리는 요가의 동작(아사나)을 정의하기를 “Sthira-sukham asanam(스티라-수캄 아사남)” 즉 “편안하고 안정된 좌법”이라고 하였다. 즉 파탄잘리의 라자 요가 주 목표는 명상의 대가가 되어 삼매에 다다르게 하는 것이기에,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의 파드마아사나, 수카아사나, 바즈라아사나 같은 편안하고 안정된 좌법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안정된 좌법을 오래 하여 깊은 명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관절과 강인한 근육이 뒷받침되어야만 했는데, 단순히 좌법을 오래 유지한다고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타 요가에서의 아사나는 단지 쉽고 편안한 좌법이 아니라 여러 다른 방향으로 몸을 구부리거나 비틀고 쭉 뻗어 신체의 긴장과 경직을 부드럽게 풀어주며 강화시키는 과정이다. 이러한 아사나 수련 과정을 통해 몸은 유연해지고 편안해져 파탄잘리가 추구하는 깊은 명상으로 들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미루어 볼 때, 하타 요가 방식의 아사나도 궁극적으로는 라자 요가에 유용하다. 즉 부드럽고 편안해진 신체가 마음에 평온함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하타 요가와 라자 요가는 불가분의 관계 즉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주목할 사실은 우리 신체가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빙산이 물의 결정이듯이 신체는 정신이 굳어진 것이다. 빙산이 녹으면 물이 되는 것처럼, 신체 역시 정신으로 변형될 수 있다. 그리하여 요가의 수행 고수들은 하타 요가와 혼합된 높은 단계의 요가 수행을 통해 자신의 몸을 영적으로 승화시켜 삼매단계 우주 의식의 대양으로 몰입되어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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