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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사바아사나와 함께
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사바아사나와 함께
  • 신미진
  • 승인 2019.03.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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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사바아사나와 함께

 

내가 다니는 요가 스튜디오는 동네에 있어서인지 분반을 하지 않는다.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 이런 나눔이 없이 항상 새로 들어온 사람들과 오래 요가를 해온 사람들이 함께한다. 젊은이들보다는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새로 요가를 하기 위해 등록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나이 든 이들이다. 누가 가끔 “요가 시작한 지 오래 되었으니 이제 요가 잘하겠네” 물으면 나는 “그러게 잘해야 되는데…” 웃고 마는데 또 물으면 “늘 새로 오는 할머니들이 있어서 늘 새로 시작해 나도”라고 대답도 아닌 대답을 하곤 했다. 
실제로 나는 요가를 오래 해왔을 뿐 잘하지 못한다. 매일매일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다. 우리 요가 스튜디오 벽에 아쉬탕가 자세들이 그림으로 되어있는 포스터가 벽에 붙어있는데 지금도 내겐 불가능한 동작이 셀 수 없이 많다. 어느 자세들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것들도 있다. 십 년이 넘게 요가를 해왔다고 하면 아주 멋진 자세를 상상하겠지만 나는 아니다. 물구나무서는 일을 일 년이 지나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가끔 반을 나누지 않고 오늘 시작하는 사람이나 십 년이 지난 사람이나 같은 반에서 수업을 해서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곧 알았다. 왜냐하면 가끔 그 수업을 따라가는 데도 숨이 찰 때가 생기더니 지금은 그런 날들이 점점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요가원에 할머니 한 분이 아들과 함께 나타났다.

아담한 작은 키에 검은 머리와 흰머리가 반반 섞인 머리를 묶고 있었다. 머리 길이가 등 뒤에까지 내려와있었다. 조그만 얼굴엔 자연스러운 잔주름이 가득이고 눈, 코, 입이 제자리에 단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한마디로 참 예쁘게 늙은 할머니. 할머니의 등장을 기억하는 것은 할머니를 모시고 온 아들 때문이다. 보기에는 별 탈 없어 보이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얼굴에 한가득 근심이 서려있었다. 딸도 아니고 아들이 어머니를 요가 스튜디오에 모시고 온 것도 특이한 일이었고.

요가원에 온 첫날 할머니는 일주일에 5일 동안 요가 수업에 출석하는 6개월짜리 정기권을 끊었고 바로 첫 수업에 동참했다. 요가원에 할머니를 등록시키려고 동행했으니 등록을 마치고 돌아갈 줄 알았던 아들이 할머니의 요가 첫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한쪽에 서서 지켜보고 있다가 수업이 끝나자 모시고 갔다. 한 시간 십 분 동안 이어지는 요가 수업을 지켜보는 아들의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문득 병을 친구 삼아 지내고 있는 시골의 나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나도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요가를 할 수 있었으면…’ 내심 부러웠던 것이다. 할머니는 첫 수업인데도 요가에 몰두했다. 요가는 처음이라고 했는데도 요가 선생님을 따라 어렵지 않게 태양 경배 자세를 따라 하고 고양이 자세도 따라 했다. 수업을 마치고는 상기된 얼굴로 아들과 함께 돌아갔다.

 

할머니의 등장을 기억하는 것은
할머니를 모시고 온 아들 때문이다. 보기에는 별 탈
없어 보이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얼굴에
한가득 근심이 서려있었다.

 

그날로부터 할머니는 아침 9시 반 수업에 꼬박꼬박 모습을 나타냈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만큼 실력을 늘게 하는 일은 없다. 그건 어린이나 젊은이나 노인이나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든 오늘 이만큼 하고, 내일 이만큼 또 하고, 모레 이만큼 또 해놓고 나중에 보면 이만큼이 산이 되어 마주 서있다. 요가도 마찬가지다. 매일매일 자기 자신에 맞게 아사나들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꿈도 못 꾸던 아사나들이 자신도 모르게 어느 날부터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 내가 비록 물구나무를 서는 데 일 년이나 걸렸지만 어쨌든 어느 날 서게 되었듯이.

할머니도 그랬다. 하루도 빠짐없이 요가 수업에 참석하자 할머니의 요가 실력은 나날이 늘어갔다. 연세가 있어서 백 벤딩이라 칭하는 후굴 자세는 힘겨울 수 있을 터인데도 부드럽게 해내었다. 수업 중 어떤 동작이 힘에 겨우면 자신도 모르게 입을 꽉 다물게 되어있는데 할머니는 어떤 동작을 하거나 누가 봐도 온화해 보이는 표정을 잃지 않았다. 할머니는 미국에서 잠시 들렀다는 동생과 함께 요가 스튜디오에 오기도 했다. 나이 터울이 상당히 나는 막냇동생이라는데 언니인 할머니보다 얼굴에 주름이 더 많아 ‘정말 동생이야?’ 싶기도 했다. 할머니는 동생에게 요가가 얼마나 좋은지 입이 닳도록 얘기하며 동생의 어깨며 허리를 반듯하게 펼 때까지 옆에서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나는 어느새 요가원에 들어서면 눈으로 할머니를 찾아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할머니는 늘 나보다 먼저 와있었다. 항상 같은 자리에 요가원의 공용 매트를 깔고, 그 위에 개인적으로 준비해온 얇은 매트 하나를 덧깔고 단정히 앉아 호흡을 하고 있거나 휴식 자세를 하고 있었다. 나날이 반듯해지는 할머니의 어깨와 허리를 확인하는 일은 나를 기쁘게 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할머니 뒤에 내 자리를 잡곤 했다. 할머니를 바라보는 일은 나에게는 나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할머니의 나날이 늘어나는 요가 실력을 뒤에서 바라보는 일은 때때로 나를 슬프게도 했다. 늙고 병든 어머니를 생각하는 일은 언제나 후회와 슬픔뿐이다. 요가에 재미를 붙이면서 눈에 띄게 생기로워져가는 할머니. 점점 더 유연해져가는 할머니의 허리를 볼 때마다 ‘저 나이에도 저럴 수 있구나’ 싶은 안심이 또다시 ‘나의 어머니도 요가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부러움으로 바뀌었다가 이내 슬퍼지곤 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친 후에 갑자기 할머니가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이제는 요가 스튜디오에 그만 나올 거라고 했다. 내가 알기론 요가 스튜디오에 나온 첫날부터 그날까지 공식적인 휴일 말고는 하루도 빠진 적이 없는 할머니여서 모두들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발언에 놀란 얼굴이 되었다. 할머니는 6개월을 하기로 하고 정기권을 끊었는데 날짜가 다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 다시 끊으면 되지요?” 누군가는 말했고, “다른 운동을 하시려고 그러세요?”라고도 했고, “지금 그만두시면 안 돼요. 그러면 아프실 거예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할머니는 그냥 계속 요가 스튜디오에 이제 못 나온다고만 했다. 설왕설래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도 ‘할머니가 갑자기 왜 그러시지?’ 생각했으나 답을 못 얻었다. 그로부터 이틀인가 수업을 빠진 할머니가 다시 요가 스튜디오엘 나왔다. 할머니는 아들이 체크해보니 아직 기한이 두 달이나 더 남아있었다고 했다. 첫날 할머니를 요가원에 등록시키고 첫 수업을 마칠 때까지 지켜봤던 그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요가 선생님도 등록 카드를 다시 체크해보더니 “그러게요. 두 달이나 더 남았네요” 했고 옆에 있던 누군가가 “등록한 날짜가 지나도 계속 요가 하셔야 해요, 할머니. 지금 보기가 얼마나 좋은데요”라고 참견했다. 그러고 보니 요가원의 9시 30분 수업에 나왔던 이들은 나만이 아니라 모두들 할머니를 자신들도 모르게 주시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작은 소란이 있은 후 할머니가 다시 요가원에 나오기는 했으나 뭔지 모르게 예전 같지가 않았다. 늘 수업 10분 전에 먼저 와서 수업 전의 준비 자세를 하고 있던 할머니였는데 그 후부터는 수업이 시작되고 20분이 지난 후에 나타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첫 수업이 끝나기 20분 전에 나타나서는 당황한 채 서있기도 했다. 그러다 며칠 안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 “할머니가 이제 요가 안 하시나?” 하니 요가 선생님이 요즘엔 저녁 반에 나오신다고 했는데 다음날엔 또 아침반 첫 수업이 끝나고 두 번째 수업 사이에 나타나서는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서있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처음 갑자기 작별 인사를 하는 소란이 있은 후로 할머니의 수업 참가 시간이 들쑥날쑥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그해의 여름날들이 그렇게 지나가고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아침반에 보이지 않던 할머니가 오늘 아침반 수업이 거의 끝나가는데 요가원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수업에 늦은 사람들은 조심스레 발가락 걸음으로 매트를 꺼내고 깔고 빨리 수업 속에 섞이려고 하는 게 일반적인데 할머니는 문을 열어둔 채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안되겠던지 요가 선생님이 수업 도중에 “이쪽으로 오셔서 여기에 자리 잡으셔요” 하면서 선생님 앞자리를 가리키는데도 할머니는 서있기만 했다.

요가 수업의 마지막 자세는 사바아사나이다. 죽은 시체 자세라고도 부른다. 바닥에 누워 온몸의 긴장을 풀고 두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양팔도 가장 편한 만큼(약 30도 각도로) 벌리고 바닥에 누워있는 자세다. 제대로 사바아사나에 10분쯤 빠지면 깊은 잠 두 시간 잔 것에 비할 수 있다 한다. 눈을 감은 채 차례로 온몸의 힘을 뺀 채 천천히 호흡을 하다 보면 바닥에 깊이 가라앉는 듯 자기 자신마저도 잊은 듯한 깊은 휴식의 시간이 찾아온다. 매번 사바아사나에 이르는 몸의 상태가 다르긴 하지만 몇 번 깊이 가라앉는 평화로운 상태에 닿아본 적이 있다. 그 후 나는 사바아사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고 요가 수업은 막바지에 이르 러 모두들 사바아사나 자세에 들었다. 할머니가 신경 쓰였지만 눈을 감았다. 한 시간 십 분 동안의 요가 동작에 이완되고 수축된 몸을 가라앉듯이 바닥에 대고 있을 때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내가 말할 게 있어요……”

 

“요가 하면서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느꼈는데……”
우리는 죽은 시체 자세를 하고 할머니의 느리고 
떨림이 많아 가끔 무슨 뜻인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목소리를 계속해 들었다.

 

“사실은 내가 좀 이상해진 지 꽤 되었어요. 지난번에 내가 동생 데리고 온 적 있지요? 몇 해 전에 그 동생이 대장암에 걸렸어요. 동생은 미국에 살고 있어요. 그때 누가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남편이… 우리 남편이 좋은 사람이거든요. 남편이 우리가 동생 데려와 살리자 해서 내가 미국에 가서 우리 집으로 동생을 데리고 왔어요. 서울로 나와서 병원에 입원시켜서 수술을 두 차례나 받고 웬만해져서 가평에 작은 별장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우리 둘이 일 년 이 개월을 살았어요. 대장암이라 먹는 게 중요해서 매일매일 대장암에 좋다는 걸 구해서 죽을 끓여서 동생을 먹이고 그렇게 지냈는데 다행히 동생은 병이 나아서 미국으로 다시 들어갔는데… 동생이 떠난 후에 내가 너무나 피로한 거예요. 일어나지도 못하겠고 잠도 오지 않고 이상해진 거예요. 점점 지난 일들이 기억이 안 나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약속 같은 것도 다 잊어버리고… 내가 왜 이러나 슬퍼하니까 아들이 ‘그래도 어머니 바깥에 나가셨다가 집에 들어오시는 그거는 잘하시잖아요. 그게 어디예요’ 하면서 위로했어요. 그렇구나, 외출했다가 집이 어딘지 잊어버려 못 찾아오는 그런 일은 없으니까 그거 다행으로 여기자… 하면서 지내왔는데 아들이 요가를 하면 좋아질지도 모른다고 권유해서 여기까지 왔고 요가 하면서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느꼈는데……”

우리는 죽은 시체 자세를 하고 할머니의 느리고 떨림이 많아 가끔 무슨 뜻인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목소리를 계속해 들었다.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나는 다시 이상해진 거 같아요. 도무지 시간이 몇 시인지를 잘 모르겠고, 요가원에 지금 가야 할 시간이다 해서 와보면 이미 지나있고 아침반이라고 생각하고 와보면 저녁반이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잘 모르겠어요. 시간이 막 뒤섞여버려서 이렇게 실례를 하네요. 오늘 같기만 하면 좋겠는데 어제는 내가 그제 뭘 했는지가 생각이 나질 않는 거예요. 하루 전의 일인데 전혀 기억할 수가 없어요. 내일은 내가 오늘 여기에 왔다는 걸 잊어버릴지도 모르겠고…”

할머니의 잦아드는 목소리를 듣고 있는 내 눈가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죽은 시체 자세로 누워있던 저만큼의 누군가가 나직이 말했다.

“에이… 할머니! 기억 다 하시네요. 몇 년 전 일까지 방금 다 말씀하셨잖아요. 지난여름이 너무 더워서 피로하고 기운이 빠져서 그러신 거예요. 다시 힘을 내면 돼요. 어서 와 누우셔서 깊은 호흡 하셔요, 할머니!”

이어서 또 누군가 말했다.

“그래요, 좀 늦고 착각하고 잊어버리면 어때요. 할머니는 동생의 대장암도 낫게 하셨잖아요. 할머니도 곧 괜찮아지실 거예요.”

나는 죽은 시체 자세에서 실눈을 뜨고 문가의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리를 내려다보더니 매트도 깔지 않은 바닥에 사바아사나 자세로 누웠다. 나는 몸에 힘을 쭈욱 빼고 다시 눈을 감고 나도 모르게 사바아사나를 향해 기도를 했다. 할머니의 호흡이 안정되기를, 할머니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신경숙 작가는
스물두 살 되던 해에 중편 ‘겨울우화’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 소설집으로는 〈풍금이 있던 자리〉, 〈감자 먹는 사람들〉, 〈딸기밭〉, 〈종소리〉, 〈모르는 여인들〉이 있고, 장편으로는 〈깊은 슬픔〉,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등이 있으며, 〈외딴방〉,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리진〉이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출판되었고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 유럽을 비롯해 37개국에 번역 출판되며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호암상과 한국 문학 최초로 맨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다. 요가로 마음을 정돈하고 글로 마음을 전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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