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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교호흡을 해본다
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교호흡을 해본다
  • 신미진
  • 승인 2019.03.0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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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교호흡을 해본다

 

에어프랑스 티켓으로 파리를 경유해 리스본에 와있다. 

가끔 사람들이 여행 중에 가방을 잃어버린 경험을 이야기할 때가 있었다. 그 불편함과 우여곡절을 간접 경험하게 될 때면 안타까움과 함께 공포가 일면서 결코 그런 일은 겪고 싶지 않다고 생각되면서도 여행이 잦은 편인 나에게도 언젠가 그런 일이 생기겠지, 예감이 되곤 했는데 불행히도 이번에 그 예감이 들어맞았다. 

사흘 전 파리를 경유한 리스본 공항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가방이 나오질 않았다. 큰 여행 가방과 작은 여행 가방 두 개를 분실물 센터에 접수하고 접수 번호를 받고 기다리니 신고 센터 직원인 포르투갈 청년이 가방이 파리공항에 있다고 했다. 무슨 문제로 그리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와 같이 서울을 떠난 가방은 파리에서 리스본행 비행기에 옮겨지지 않은 거였다. 다음 비행기로 가방이 리스본에 도착하면 내가 묵는 호텔 리셉션으로 배달해주겠다고 했다. 파리에서 나와 함께 리스본행 비행기를 타지 못한 가방은 두 개였다. 그 번호들과 호텔 주소를 기입하고 택시를 타고 가방 없이 호텔에 투숙했다. 여행을 망친 기분에 깊이 빠져들까 봐 칫솔 치약을 구해서 양치질을 정성들여 했다. 자정 무렵에 이메일과 문자가 도착했는데 가방이 리스본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고 호텔로 배달이 될 거라는 아주 친절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자도 메일도 가방 두 개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한 개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어서 내심 ‘이거 한 개만 오는 거 아니야…’ 불안이 스쳤지만 설마 싶었는데 아침에 호텔 리셉션에 도착한 가방은 믿기지 않게도 한 개였다! 

아침 11시 반에 일로 미팅이 잡혀있는 상황인데 10시쯤 도착한 가방이 한 개뿐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때까지 침착을 가장하고 있던 나는 머릿속이 터지는 것같이 화가 치밀었다. 포르투갈어를 유창하게 하는 이를 통해 어제 신고 센터에서 이후의 다른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이용하라고 쓰인 전화번호를 일러주며 전화를 걸어보게 했다. 나머지 한 개의 가방에 대해서는 정보가 아직 없어서 다시 파리공항과 소통을 해서 가방의 행방을 알아봐 오후 1시쯤 연락을 하겠다는 게 다였다. 이런 일을 처음 겪어서 이 미진한 대답에 마음이 온통 불만과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는 데 일 분도 걸리지 않았다. 내 두 개의 여행 가방이 파리에서 리스본으로 오는 비행기에 옮겨 실리지 못한 후에 어떤 취급을 당했을까? 상상하니 울화통이 치밀었다. 에어프랑스에 대해 온갖 험담을 혼자 웅얼거렸다. 에어프랑스가 어떻게 일을 이렇게 허술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분명히 분실된 가방은 두 개라고 했고 가방 정보를 자세히 말하고 적어주었는데 그중 한 개만 보내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가. 도대체 내 가방은 어디를 떠돌고 있단 말인가.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그대로의 복장으로 미팅에 나가 일을 보고 있는 중에도 돌아오지 않는 가방 생각으로 목이 아플 만큼 갈증이 일었다. 

 

이곳에 한 달쯤 머물 계획이라 매일매일 요가를 
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 다시 통증을 통과해야 한다는 
생각에 요가 매트를 여행 가방 안에 넣었다. 
그런데 그 가방이 파리에서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여행 가방을 꾸릴 때 내가 그 가방 안에 넣었던 물건들의 세목을 떠올려보았다. 미팅에 입고 나가려고 했던 외투와 매일 아침 먹어야 하는 약과 책과 고추장 볶은 것과 또 뭐더라… 기억을 더듬다가 요가 매트를 돌돌 말고 묶어서 돌아오지 않은 가방 안에 넣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가 매트를 여행 가방 안에 챙긴 것은 다른 여행 때는 안 하던 짓이다. 요가 매트야 어느 도시에나 있고 필요하면 그 도시에서 구하면 되는데 왜 기필코 요가 매트를 챙겨서 가방 안에 넣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요가에 대한 글을 쓰는 이 마음이 여행 가방을 꾸리는 마음에 깊이 작용했던 것 같다. 요가를 시작하고 난 후 나는 어떤 한 도시에 장기 체류를 하게 될 때는 맨 먼저 그 도시의 요가 스튜디오를 찾아내 등록을 하곤 했다. 

요가를 시작한 뒤에 내가 맨 처음 겪은 일은 뜻밖에도 통증이었다. 요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동안 쓰지 않던 숨겨진 근육들을 사용하기 시작한다는 뜻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의 등과 허벅지와 종아리 등은 요가를 시작한 3주가량 쑤시고 결리고 아파왔다. 그 통증의 강도가 만만치 않아서 ‘요가가 나에게 맞지 않은데 내가 억지로 몸을 맞추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그동안 나의 요가 선생님들은 숱하게 바뀌었지만 그 선생님들 말씀 중에서 내가 가장 기준으로 삼았던 것은 사람마다 인체의 구조가 모두 다르니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것과 호흡과 함께 모든 동작들을 가능한 만큼만 하라는 것이었다. 남과 비교하기는커녕 나는 몸을 움직이는 일과 운전하는 거에 대해서는 남들과 비슷한 선상에 놓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몸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나는 안 되는 사람이다’, ‘운전에 대해 시비가 붙으면 내가 잘못했을 거다’가 나의 기준이다. 거기에 요가 선생님의 “가능한 만큼” 하라는 말씀들을 새겨들어 요가는 일관성 있게 그날그날 “가능한 만큼”만 했는데도 처음 요가를 시작하고 찾아온 건 통증이었다. 그 통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요가 스튜디오에 등록을 할 때의 나의 몸은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그로기 상태여서 오버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가능한 만큼만 따라했는데 요가를 마치고 나면 내 몸은 풀리는 게 아니라 더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오랜만에 산행을 하고 나면 다음날 엉덩이와 허벅지와 종아리가 당겨서 걷기가 힘든 바로 그 상태였다. 

모처럼의 산행 후의 통증을 가장 빨리 치유하는 길은 바로 다음날 다시 산행하는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그렇게 계속되면 통증은 사라진다. 요가도 비슷했다. 3주일쯤 계속되던 통증은 점점 사라지더니 한 달가량이 되었을 땐 몸이 믿기지 않게 가벼워졌다. 한 달쯤 후에 찾아온 그 몸의 가벼움에 나 스스로 깊이 감동하지 않았다면 나는 중간에 요가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통증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다. 어쩌다가 해외 체류나 집을 떠나있게 되어 요가를 일주일 이상 하지 않고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다시 요가 스튜디오에 나가면 쉬었던 만큼 그 통증도 다시 시작되었다. 어김없이 그 통증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집을 떠나 다른 곳에 장기 체류를 하게 될 때는 그곳의 요가 스튜디오를 찾아내 등록을 하고 집에 있을 때와 비슷하게 요가를 하는 것이었다. 요가는 매트만 있으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집중이 잘되고 호흡도 잘된다. 

 

지금 파리에서 오고 있다는 잃어버린 내 가방이 
누가 내게 선물이라도 한 것처럼 여겨져 마음이 들떴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려 호텔 바닥 카펫에 
등을 세우고 앉아서 교호흡을 해본다.

 

그동안 요가 스튜디오에 가장 많이 등록한 도시는 뉴욕이었다. 그곳에 사는 젊은 친구가 한번은 유니언 스퀘어에 있는 ‘룰루레몬’ 매장에 나를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난다. 나를 “작가님, 작가님…” 이렇게 꼭 두 번을 부르는 그 친구는 룰루레몬의 홍보대사인가 싶을 만큼 룰루레몬을 예찬하며 룰루레몬의 요가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뉴요커들에 대해서 얘기해주었다. 룰루레몬에서 나온 요가 바지를 입으면 엉덩이도 아주 탄력 있게 보인다고 했다. “꼭 요가를 하기 위해서만 입는 옷이 아니에요”라면서 뉴요커들이 주말 아침이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룰루레몬의 요가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요가 매트를 어깨에 메고 친구를 만나러 나가 브런치를 먹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요가는 안 하고?”

내가 묻자, 그 친구는 하하 웃으며 “내가 취재하진 않아서 정확하진 않지만요, 뉴요커들은 지금은 요가는 안 하지만 언젠가는 하고 싶고 지금도 요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는 거 같아요…”라고 했다. 내가 의아해서 “왜?” 물으니 “진보적이고 멋있잖아요”라고도.   

그때 그 친구의 대답이 유쾌해서 활짝 웃었다. 진보라는 말이 요가 앞에 붙을 줄은 생각을 못 했고 동의하려면 더 많은 질문과 관찰이 필요하겠지만 요가에는 그런 매력이 묻어난다. 뉴욕에는 요가 스튜디오가 다른 도시들보다 많다. 뉴욕의 요가 스튜디오들은 서로 연계가 되어있어서 등록한 요가 스튜디오만이 아니라 취향에 따라, 혹은 그날 기분에 따라 요가 스튜디오를 옮겨 다니며 수업을 받을 수 있다. 명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명상 시간이 더 길게 잡혀있는 스튜디오를 찾으면 되고, 아사나에 더 많은 의미를 두는 사람들은 아사나 위주의 수업에 들어갈 수 있고, 호흡을 중요시하는 선생님이 좋을 때는 그 선생님이 있는 클래스에 들어갈 수 있는 선택과 자유가 얻어지는 셈이다. 이런 제도의 덕을 보아 어느 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무렵에 나도 뉴욕의 첼시 쪽에 있는 요가 스튜디오들을 여러 군데 경험해본 적이 있는데 나에게는 옮겨 다니며 요가를 하는 것이 맞는 쪽은 아니었다. 하지만 잠시 머무는 방문객으로서 그 도시의 여러 요가 스튜디오를 방문한 기억은 신선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젊은 친구는 나에게 “뉴요커들 중엔 요가를 하는 사람보다 요가를 하는 게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했지만 내가 다녀본 뉴욕의 요가 스튜디오의 클래스엔 언제나 사람들이 가득이어서 정해진 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매트를 깔 자리가 없곤 했다. 그들 속에 섞여 들어 인헤일과 엑스헤일을 할 때 그곳은 낯선 곳이 아니었다. 

글을 쓰기 위해 혹은 혼자 있기 위해 낯선 장소에 오래 머물게 되면 그 근처에 요가 스튜디오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보는 내가 이번에 여행 가방 안에 요가 매트를 따로 챙겨 넣었던 것은 잠깐씩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는 리스본에서 요가 스튜디오를 본 기억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곳에 한 달쯤 머물 계획이라 어떤 식으로든 매일매일 요가를 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 다시 통증을 통과해야 한다는 생각이 요가 매트를 여행 가방 안에 넣게 했다. 요가를 하는 데는 별로 필요한 게 없다. 요가를 하겠다는 마음과 매트 하나면 있으면 어디에나 펼쳐놓고 할 수 있는 게 요가다. 여행 가방 안에 요가 매트를 넣으면서 리스본에 요가 스튜디오가 없으면 호텔 바닥에 깔아놓고 아침에 태양 경배 자세를 열여섯 번 반복해서 하자고 생각했다. 그 요가 매트가 들어있는 가방이 파리에서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왼쪽 콧구멍의 숨을 내쉬며 다시 숫자를 세어본다. 
요가를 시작한 후 나의 마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는데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신고 센터에서 가방의 행방을 알아보고 연락을 하겠다는 1시가 되기 전에 조급한 내 쪽에서 다시 전화를 걸었으나 계속 가방의 행방을 찾고 있으니 6시에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아 조급한 내 쪽이 6시가 되기 전에 또 전화를 하니 파리에서 가방을 찾았다고 했다. 요가 매트가 들어있는 나의 가방은 리스본으로 출발하는 밤 비행기에 실릴 것이고 자정쯤 리스본에 도착할 것이고 배송 회사에서 다시 내일 아침쯤 호텔의 리셉션에 보낼  예정이니 체크해보라고 했다. 왜 이런 반복을 할까? 처음부터 두 개를 찾아 같이 보냈으면 좋지 않았느냐 말이다. 훅 치고 들어오는 저항을 가라앉히려고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사라진  가방 중 한 개만 호텔로 돌아왔을 때를 생각해본다. 돌아온 한 개의 가방을 보자 나머지 가방은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비관이 젖어있던 순간이 떠오르자 지금 파리에서 리스본으로 오고 있다는 내 가방이 누가 내게 선물이라도 한 것처럼 여겨져 마음이 들떴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려 호텔 바닥 카펫에 등을 세우고 앉아서 교호흡을 해본다. 리스본 도착 후 사흘 동안 마음을 혹사시켰다.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허리가 휘는 기분이다. 왼쪽 콧구멍으로 호흡을 한 뒤 오른 엄지로 오른쪽 콧구멍을 막고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넷…’ 세어본다. 따라오지 않은 여행 가방 때문에 조급했던 건 마음인데 꼬이듯이 아픈 건 장이었다. 왼쪽 콧구멍의 숨을 내쉬며 다시 숫자를 세어본다. 요가를 시작한 후 나의 마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는데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조급하게 굴고 들뜨기까지 하는 극단을 오가서 미안하다, 마음아.


 

 

신경숙 작가는
스물두 살 되던 해에 중편 ‘겨울우화’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 소설집으로는 〈풍금이 있던 자리〉, 〈감자 먹는 사람들〉, 〈딸기밭〉, 〈종소리〉, 〈모르는 여인들〉이 있고, 장편으로는 〈깊은 슬픔〉,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등이 있으며, 〈외딴방〉,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리진〉이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출판되었고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 유럽을 비롯해 37개국에 번역 출판되며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호암상과 한국 문학 최초로 맨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다. 요가로 마음을 정돈하고 글로 마음을 전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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