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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집중, 다라나에 이르기 위하여
온전한 집중, 다라나에 이르기 위하여
  • 신미진
  • 승인 2019.01.07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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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수트라 경전의 저자 파탄잘리는 몸과 마음의 정화를 위한 라자 요가의 8단계를 정리했다. 라자 요가는 우리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영적인 에너지로 바꾸어 궁극적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요가수행 체계 중 하나이다. 진리를 찾는 이에게 이러한 단계들은 파탄잘리가 살았던 그 시대에도 중요했던 것처럼 현재 우리가 사는 오늘날 역시 중요하다. 라자 요가의 8단계는 야마, 니야마, 아사나, 프라나야마, 프라트야하라, 다라나, 디야나, 사마디이다. 이번에는 여섯 번째 단계인 다라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마음의 온전한 집중,

다라나에 이르기 위하여

여동구

 

휩쓸리는 현대인, 불안정한 다라나

아마 카페를 간 적이 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다들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혹시 많은 이들이 핸드폰을 하고 있지 않았는가? 혼자 카페를 찾은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누군가와 동행한 이들 중에도 대화를 하는 모습보다는 각자의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을 것이다. 친구를 만나면서 대화 없이 자신의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고, 산책을 하면서 오롯이 자연을 즐기지 못하고 머릿속으로는 일을 생각하거나 전화 통화를 하고, 무엇을 먹고 있으면서도 먹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이건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일 것이다.

하루 종일 다라나 상태에 있는 것이 이상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현대인의 삶은 TV에서 시작해 각종 SNS, 인터넷 등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몰아치는 정보들 때문에 늘 마음이 불안하다. 그래서 우리는 산만함에 익숙해져 집중하기 어렵게 된다. 또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바쁜 상황에 빠져들게 되고 그로 인해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다라나,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는 것

“다라나는 수행자가 정신을 집중하는 동안 의식 속에 있는 신성한 영혼을 붙잡는 행위이다.”  ―암리트나드오파니샤드 15

“감각 세계로부터 의식을 분리시키고 그것을 초의식 상태에 머물게 하는 것, 그것이 곧 다라나이다.”  ―만다라브라만오파니샤드 1. 1. 8

육체가 아사나에 의해서 단련되어지고, 마음은 프라나야마로 가다듬어지고, 모든 감각 기능이 프라트야하라의 통제 아래 있게 될 때 수행자는 다라나라고 불리는 여섯 번째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 상태에서 수행자는 한 가지 일이나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완전히 집중하게 된다. 이때 마음은 외부 세계로부터의 생각과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분류, 판단, 조화시키는 도구로써 완전한 몰아(沒我)의 경지를 맛보기 위해 안정되어야 한다.

마음이란 미묘하고 변덕스럽고 또한 여러 가지 생각들로 가득 차있어서 통제하기 무척이나 힘이 든다. 그러나, 마음은 사고를 위한 도구이고, 그 도구의 사용 방법을 정확하게 안다면 그 도구를 통해 최고의 효과,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잘 다루어진 마음에 의해서 보호된 생각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이렇듯 진정한 다라나는 모든 육체 의식과 불안한 생각이 멈추고 혼란 없이 명상의 대상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당신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힌두교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에는 활 연습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스승인 드로나는 영웅 아르주나와 그의 다른 네 형제에게 궁술을 가르친다. 그는 나무로 제작한 작은 새를 높은 나무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화살로 떨어뜨리라고 말한다. 드로나는 활을 쏘기 전에 네 명에게 묻는다. “너희들은 무엇이 보이는가?” 형제들은 각각 ‘나무의 웅장함’, ‘가지의 풍성함’, ‘자신과 나무와의 거리’, ‘활과 화살의 견고함’, ‘자신의 몸 상태’, ‘새의 모양’ 등 장황하게 설명한다. 드로나는 마지막으로 아르주나에게 질문한다. “너는 무엇이 보이는가?” 그러자 아르주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는 새를 봅니다.” 그러자 드로나가 다시 묻는다. “그러면 새가 어떻게 생겼는지 묘사해보아라!” 그러자 아르주나는 이렇게 답한다. “저는 새의 모양을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새의 눈만 보기 때문입니다.” 아르주나의 화살은 여지없이 새의 눈에 명중하게 된다.

아르주나와 형제들의 차이를 찾았는가? 아르주나는 온통 새의 눈만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집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형제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한군데 모으지 못하고 매 순간 유혹하는 흥미로운 것들에 휩싸여 집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르주나는 엄청난 다라나 수행을 통해 방해물이 방해를 할 수 없도록 무시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바가바드기타> 11. 41에는 아르주나의 마음을 크리슈나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오 쿠루의 자손이여! 이 한 가지 길 위에 있는 자의 생각은 단호하다. 그의 목적은 하나다. 그러나 단호하지 못한 자의 생각은 잡스럽고 끝이 없다.”

 

다라나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집중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힘이 하나의 중심점에 모이게 된다. 어떤 일을 하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므로, 명상을 할 때에는 집중을 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이런 법칙은 모든 것에 적용이 된다. 자연 상태에서 흩어져 있는 모든 종류의 힘은 느리게 움직이고 위력이 약하다. 그러나, 하나로 모아 응집하게 되면 훨씬 강력한 힘을 띠게 된다. 강물을 댐에 가두어 두면, 한때는 자유롭게 흘렀던 물이지만 이제는 상상할 수 없는 위력을 내뿜으며 수문을 통해 뿜어져 나온다.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면, 그저 따뜻하기만 했던 태양의 힘을 이용해 불을 붙일 수 있게 된다. 이런 것들이 바로 집중의 위력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한 순간에 하나의 감각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보거나 듣는 것 중 하나만을 할 수 있을 뿐 그 둘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빠른 속도로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에 둘 다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뿐이다.

산업 사회, 정보화 사회가 발전하면서 우리에게는 머리만 존재하고 따뜻한 가슴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정보와 빠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사람들은 머리에만 집중하고 따뜻한 가슴을 놓치는 것이다. 이는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심란하고 항상 집중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정보를 조금 덜 받아들이고 빠른 변화 속에서 느리게 생각하고 느리게 호흡하고 한 번에 집중은 어렵겠지만 조금씩 집중하는 연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집중의 상태, 나아가 머리가 아닌 가슴이 따뜻한 상태, 생각해보면 다라나에서 놓치고 있는 건 따뜻한 마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 지금 이 순간부터!

지난 호에서 이야기한 프라트야하라를 기억할 것이다. 다라나와 프라트야하라를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 프라트야하라는 밖으로 향한 감각을 내면으로 향하게 할 수 있게 되고, 감각 기능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라나는 마음의 흩어짐 없이 한 점에 머무르며 완전히 집중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두 가지를 정확히 이해하여 헷갈리지 말자.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은 당연히 이 칼럼을 읽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칼럼에만 집중하자. 이것이 당신의 삶에서 다라나를 연습하기 시작하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이든 여러분이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부터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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