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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 그 집의 우물은 아직도…
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 그 집의 우물은 아직도…
  • 신미진
  • 승인 2019.01.0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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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그 집의 우물은 아직도…

 

나는 비교적 건강 체질이다. 아직까지는 크게 아파서 병원에 입원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고 쓰는데 결혼 하고 얼마 후에 자궁근종 수술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를 갖고 싶었다. 딸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엄마에게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으면서 내게 딸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와 친구처럼 인생을 살아내고 싶은 그런 꿈이 있었다. 분홍색 뺨을 어루만지고도 싶었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만지면서 놀고도 싶었다. 그리고 아기 냄새를 맡고 싶었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나에게 아기 냄새는 이른 아침 이슬을 맞으며 피어난 나팔꽃, 혹은 오월의 장미꽃잎에게서 맡아지는 것과 냄새가 비슷하게 여겨진다.

늦은 결혼이었지만 처음 이 년 동안은 아기를 갖기 위해 특별하게 노력하진 않았다. 다만 자연스럽게 아기가 우리에게 와준다면 설렐 것이리라, 여겼다. 이태가 지난 후에야 어쩌면 아기가 나에게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는 내 자궁의 아기가 들어앉을 만한 자리에 근종이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내 쪽에서 그 근종을 없애면 아기가 생길까요? 라고 물었을 것이다. 소설 쓰는 일은 어떻게 계속해왔을까? 가끔 궁금해질 만큼 매사에 추진력이 없이 게으른 내가 그 근종을 없애려고 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걸 보면…

수술은 복강경으로 진행되어 크게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사흘인지 나흘인지 입원을 했었는데 병실의 창이 거리로 향해 나 있어서 밤에 잠들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커튼을 내려도 어슴푸레한 빛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빛 속에서 천장을 보며 누워 있다가 결국은 일어나 책을 읽었을 것이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아가야, 나에게 와… 중얼거렸을지도. 그 일은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이 없다. 건강검진 때조차 수술한 적이 있는지 질문하는 자리에 아무 표시를 하지 않았다. 그 수술 이후에 나에게 꿈처럼 아이가 왔다면… 아마도 그 아이에게는 말하지 않았을까.

그때를 빼면 병원에는 알레르기나 감기나 몸살, 약한 치아 문제로 자주 들락거렸어도 입원을 할 정도로 아픈 적이 아직은 없다. 체질이 건강하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축복이지만 소설을 쓰는 이에겐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소설을 쓰는 일은 노동이고 장편은 체력전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 스타일의 무엇인가를 개발해서 적절히 조절하지 않으면 소설을 쓴다고 집중할수록 건강은 나빠진다. 더구나 나처럼 폭식형 글쓰기를 해온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내가 건강할 수 있었던 것은 첫 번째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16세에 떠나온 태어난 마을이 학교와 멀었던 덕분이었다. 초등학교 6년을 아침저녁으로 들길과 산길을 4킬로씩 합해 8킬로를 걸어 다녔다. 중학교는 집에서 좀 더 멀어서 3년 내내 자전거를 타고 5킬로씩 그러니까 등교와 하교를 합해 거의 매일 10킬로씩을 달렸다. 게다가 학교 가는 길은 평지가 아니었다. 자갈이 깔린 신작로 길이거나 좁은 수로를 사이에 둔 들길이었다. 1.5킬로쯤은 아주 가파른 산길이라 숨이 차서 자전거를 타고 오를 수가 없었다. 자전거에서 내려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자전거를 끌고 걸어 올라가곤 했다. 학교에 늦을까 봐 아주 빠른 걸음으로. 초등학교 때는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책보 ―책가방을 4학년 때 처음 가졌다. 그 전까진 보자기에 책을 싸서 들거나 허리에 매고 다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때는 내 동무들 모두들 그랬다― 를 매고 한 시간쯤 걸어서 학교엘 가면 아침에 먹은 밥이 소화가 다 되어버려서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배가 고팠다. 점심시간까지 기다려 도시락을 먹는 일이 좀처럼 드물었다. 어찌나 순수하고 건강하게 배가 고프던지 아무리 인내심을 발휘해도 둘째 시간 끝나고 쉬는 시간에는 어느덧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이 규칙적인 6년의 도보와 3년의 자전거 타기가 나를 아주 강건한 시골 소녀로 만들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16세까지 살았던 그 시간은 훗날 소설가에게 필요한 절대적인 건강을 내게 선물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나는 소설가가 된 후에 사나흘씩 날을 새워도 다시 잠만 충분히 보충해주면 별 탈 없이 평상시로 돌아왔다.

 

나는 그 집의 우물을 좋아했다. 아무리 길어 올려도 
바닥나지 않고 저 아래에 물이 찰랑거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 느끼는 신비와 희열이 있었다.

 

그 천연자원처럼 느껴지던 체력에 이상이 왔다고 느낀 것은 마흔을 앞두고서였다.

나는 비교적 잠자리에서 꾸물거리지 않고 가뿐히 일어나는 편이었는데 마흔을 앞두고서 잠에서 깨어나 맑은 정신을 수습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기 시작했다. 수면의 질도 떨어져서 잠을 잔다고 하지만 작은 기척에도 깨버리고 항상 몸이 피곤했고 의욕도 저하되어 자주 무기력증에 빠져들어 제 리듬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어깨가 아파서 손을 올리기도 불편하고 팔과 손목은 저릿저릿했다. 꽤 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현관문이 나오는 집에서 살던 때였는데 단숨에 오르던 계단을 몇 번이고 쉬어야만 했다. 체력은 떨어지고 체중은 늘었다. 움직이기가 싫어졌고 간단한 약속 지키는 일에도 다짐이 필요해졌다.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는 데 워밍업 시간이 두 배는 더 길어졌다. 잠을 자면서도 어깨 통증이 느껴져 아파… 혼잣말이 새어나왔다. 집 근처에 산이 있기 때문에 아침에 자주 산책 삼아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힘에 부쳐서 비탈진 산을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때 느꼈다. 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건강과 시골 생활이 나에게 가져다준 체력이 이제 바닥이 났다는 것을.

어린 시절을 보낸 나의 집엔 우물이 있었다. 매일 우리 가족과 몇 이웃들에게 식수를 공급하면서도 우물은 한 번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 마을에도 상수도 시설이 구비되고 수돗물을 사용하게 된 이후에도, 이제 아무도 물을 길어내지 않는 지금도, 그 우물엔 물이 고여 있다. 나는 그곳을 떠나온 이후에 시골집에 가면 우물 뚜껑을 밀어내고 우물 속을 들여다본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내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던 해는 82년이고 그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벌써 삼십 년도 전의 일이다. 소설 창작 수업에서 노스승이 아주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는 표정으로 문학이란 ‘깊은 우물 속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는 것’이라고 했을 때 나는 대번에 그 말과 소통되었다.

어린 내 몸집이 커지고 손잡이 달린 양동이를 들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부터 16세에 그 집을 떠나올 때까지 나는 아침이면 그 집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부엌의 엄마에게 가져다 드렸다. 해 저물녘에도 그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부엌의 물동이를 채워놓곤 했다. 나는 그 일을 하는 게 좋았다. 우선 엄마의 일을 줄여줄 수 있는 게 기뻤다. 엄마에겐 내가 큰딸이었다. 내 위로 모두 아들뿐이라 엄마는 늘 혼자서 바삐 움직였다.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일 앞에서 엄마가 어느 날 주저앉을까 봐 어린 나는 항상 두려웠다. 그래서 엄마가 해야 할 일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알아서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과는 달리 어쩌든 엄마 곁에 있으려고 했다.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엄마가 흐뭇해했기 때문에 나는 엄마 앞에서는 일부러 책을 읽기도 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엄마에게 가져다주는 일도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 중의 하나지만 그 일은 약간 다르다. 나는 그 집의 우물을 좋아했다. 우물 속으로 두레박을 던지는 일, 두레박에 맑은 물이 가득 담기도록 줄을 조절하는 일, 줄을 당겨 물이 가득 찬 두레박을 양손으로 잡고 맑은 물을 양동이에 붓는 일, 다시 두레박의 긴 줄을 풀어 우물 밑으로 내리는 일들이. 무엇보다 길어 올려도 길어 올려도 물이 바닥이 나지 않고 저 아래에 물이 찰랑거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 느끼는 신비와 희열이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두레박질을 하지 않을 때도 그 집의 우물 턱에 손을 짚고 저 깊은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다. 그 집의 우물은 지금도 물이 고여 있다.

그 우물의 영향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체력이 고갈되어 아침에 눈뜨는 일조차 힘들어지는 순간이 내게 당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불행히도 나는 그 집의 우물이 아니었다.

 

아직 오픈도 안 한 텅 빈 요가원에서 그림 속 자세를
따라하는 내 그림자가 마루에 길게 늘어졌다.
그림자를 보며 나는 그 요가원에 등록할 것을 결정했다.

 

이렇게 체력이 바닥나서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무기력증에 빠진 채 마흔을 맞이했다. 어깨가 무너질 것 같고 오후가 되면 편두통에 머리 한쪽이 쪼개지는 것 같았다. 건강에 자신하며 관리나 보충을 하지 않고 오버해서 쓰기만 한 자에게 찾아온 터널 속 같은 불안감은 나날이 더 깊어졌다. 그러던 봄날이었다. 그날도 두통에 시달리며 머리를 싸매고 있다가 집을 나왔다. 찬바람이라도 쏘이면 좀 나아질까? 해서였다. 그날은 평소에 다니던 산 쪽으로가 아니라 동네로 내려갔다. 그러다가 ‘샨티 요가원’이라는 간판을 보게 되었다.

요가원?

동네에 요가원이 생기는가? 그렇지 않아도 지인이 내가 무기력증을 호소하니 요가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던 때였다. 그때만 해도 요가원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요가를 권유한 지인은 요가가 나에게 잘 맞을 것이라고 했다. 요가를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면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두통과 어깨 통증은 잠잠해질 거라고 했다. 문제는 내가 사는 동네에 요가원이 없어서 요가를 하기 위해서는 홍대까지 나가야 된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홍대까지는 자동차로 한 시간쯤은 걸리는 거리다. 나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얼마간 알고 있다. 아마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화시키지 못할 나쁜 습관 몇도 알고 있다. 안타깝게도 나쁜 줄 알면서도 그것을 지인처럼 끼고 살아갈 것이란 예감이다. 오로지 요가를 하기 위해서 한 시간을 자동차로 이동하는 그런 열정 있는 부류의 인간이 못 된다는 것도 그때 알고 있었다. 분명 한두 번 나가보고 귀찮아 그만둘 것이 빤해서 시도를 하지 않고 있던 참인데 그 두통에 시달리며 산보를 나간 동네에서 요가원 간판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그 간판이 보고 싶은 친구의 이름이기라도 한 듯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요가원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을 찾아보았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문단속을 하지 않아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새 요가 매트들이 가지런히 정리함에 정돈되어 있고, 훗날 이름을 알게 된 대나무로 만들어진 쿠룬타가 놓여 있고 벽에는 아쉬탕가 요가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림이 붙어 있었다. 잠깐 서성이며 누군가 나타나길 기다렸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칠판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를 메모하고 안내문을 꼼꼼히 따라 읽었다. 아직 요가 수업이 시작된 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회원 모집과 오픈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가끔 이런 행운을 누릴 때가 있다. 뭔가를 찾고 있는데 곧 그게 눈앞에 나타나는 것. 그런 행운을 느끼자 신기하게 두통이 옅어졌다. 산이 가까이 있어 공기는 좋으나 학교도 없고 시장도 없는 서울에서는 외지다고 할 수 있는 내 집이 있는 동네에 요가원이 생기다니…

홍대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요가원은 이미 충분히 나에게 매력적이었다. 인기척이 없이 텅 빈 요가원 마루에 봄날의 오후 햇살이 따스하게 퍼지고 있어서 그 빛 속에 한참을 드러누워 있어도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빛 속에서 몸을 일으켜 벽에 붙어있는 아쉬탕가 요가 자세 앞에 서보았다. 엄지발가락과 뒤꿈치를 붙이고 똑바로 서보았다. 손을 들어 천장 위에서 합장하고 깊은 숨을 내쉬어보았다. 아직 오픈도 안 한 텅 빈 요가원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그림 속 자세를 따라 해보고 있는 내 그림자가 마루에 길게 늘어졌다. 그 그림자를 보며 나는 그 요가원에 등록할 것을 결정했다. 그게 나와 요가와의 첫 만남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 결정이 내가 소설 쓰기 다음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하는 일이 될 줄은.

 

 

 

신경숙 작가는
스물두 살 되던 해에 중편 ‘겨울우화’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 소설집으로는 〈풍금이 있던 자리〉, 〈감자 먹는 사람들〉, 〈딸기밭〉, 〈종소리〉, 〈모르는 여인들〉이 있고, 장편으로는 〈깊은 슬픔〉,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등이 있으며, 〈외딴방〉,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리진〉이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출판되었고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 유럽을 비롯해 37개국에 번역 출판되며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호암상과 한국 문학 최초로 맨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다. 요가로 마음을 정돈하고 글로 마음을 전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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