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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 요가 스튜디오에서의 북 리딩
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 요가 스튜디오에서의 북 리딩
  • 신미진
  • 승인 2018.12.0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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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요가 다녀왔습니다”

요가 스튜디오에서의 북 리딩

 

지난 일요일 오후 2시쯤 머리를 감고 있다가 갑자기 스치는 어떤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서 마른 타월로 머리카락의 물기만 닦아낸 후 후배 L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랜만에 그의 옛 별명을 불러보았다. 그리고 썼다. “이런 얘기 굉장히 뜬금없겠지만,” 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린 물기가 이마와 귓등으로 흘러내렸다. “요가에 관한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 좀 알아봐줄 수 있을까?” 어떤 일은 어느 일요일에 이렇게 느닷없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내 작품 <리진>이 뉴욕의 출판사에서 ‘The Court Dancer’란 제목으로 출판이 된 일로 9월에 나는 뉴욕을 방문했다. 에이전트와 미국 출판사가 마련해놓은 몇 가지 스케줄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어퍼웨스트사이드에 있는 요가 스튜디오에서의 북 리딩이었다.

요가 스튜디오에서 리딩을?

나는 스케줄 표에 ‘Book Reading & Discussion with Acclaimed Korean Author’라고 쓰여 있는 걸 한참 응시했다.

미국 에이전트가 내 스케줄을 짜기 위해 얼마나 고심을 했는지 짐작이 가서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한국에서야 내가 소설가로 살아온 지 33년이 되어 내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뉴욕에서는 2011년의 <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m)>가 첫 책이다. 이제 8년 된 신인 작가에 불과한 것이다. 그 사이에 다행히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I’ll Be Right There)>와 <외딴방(The Girl Who Wrote Loneliness)> 그리고 올여름에 <리진(The Court Dancer)>까지 4권이 연이어 출간되는 기쁨을 누리긴 했다. 외국에서 책을 낼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는데 나의 이름이 외국인이 발음하기에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공식 석상에서 예의를 지키느라 겨우 이름 전체를 한 번 부른 후에는 주로 “씬” 하거나 아니면 “켱”이라 불렀다. 그것도 어려워 꼭 불러야 할 때만. 내 이름이 그리 어렵게 불릴 적마다 ‘무라카미 하루키’ 나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이름을 떠올리곤 했다. 하루키가 필명이라는 얘긴 듣지 못했으나 바나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느 나라에서나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작명했다고 한다. 혹시 나도 그랬어야 했을까?

유명하지는 않고 발음하기는 어려운 이름을 가진 나를 위해 에이전트가 스케줄을 짜다가 본인이 다니는 요가 스튜디오에서의 리딩까지 추진한 것이다. 그 마음에 답하기 위해서 나는 지난 9월에서 10월 사이에 에이전트와 미국 출판사가 만들어놓은 스케줄에 정성껏 임했다. 무엇보다 단 한 번도 약속 시간에 늦지 않았다. 독립 서점에 가서 책 5권에 사인을 하기도 했고, 블로그의 서면 인터뷰에도 성실히 답장을 했다. 물론 하모니클럽이나 북컬처 같은 서점의 리딩과 이후의 질문들도 귀를 열어놓고 듣고 답했다. 독자에게 그것도 해외의 독자에게 작품의 한 대목을 읽어주고 그들과 작품의 배경을 공유하는 일은 통역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소통이 자유스럽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리진>의 배경은 현대가 아니라 한국 역사 중 근대가 시작되는 백 년 전이다. 백 년 전의 조선이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 같은 열강들의 간섭과 힘겨루기에 끼여 균형을 잃고 패망해가는 상황을 설명하는 일은 언제나 나를 긴장시켜서 함께하는 시간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면 소파에 푹 쓰러져 잠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곳에서 왜 그렇게 마음이 평화로워졌는지.
나에게서 사라진 것 같은 웃음이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인사하듯이 그들에게 첫인사를 했다.

 

요가 스튜디오에서의 리딩이 있는 날 아침에 나는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등록해놓은 숙소 근처의 요가 스튜디오에 요가를 하러 갔다. 나무 자세가 되지 않았다. 나무 자세는 말 그대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바르게 서 있는 나무를 몸으로 만드는 형상이다. 한 다리는 바닥을 짚고 한 다리는 허벅지에 찌르듯이 댄 채 몸을 바르게 세우고 두 손은 합장을 하고 머리 위로 올려 3분쯤 유지하는 것이다. 자연히 몸의 균형 감각이 키워진다. 집중이 필요한 동작이라 생각이 많은 날은 나무 자세가 흔들린다. 바람 앞의 나뭇가지처럼. 그날 나의 나무 자세도 바람 앞의 잔가지들처럼 흔들흔들거렸다. 요가 스튜디오에서 처음 하게 될 리딩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약속된 시간 요가 스튜디오에 갔을 때 입구에 내 사진과 책 표지가 실린 팸플릿이 가만히 붙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의 책들이 한편에 진열되어 있고 막 요가를 마친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의자들을 배열하고 있었다. 요가 스튜디오의 주인인 스테판과 잉그리트와 인사를 했다. 첫눈에 나는 그들에게 반해버렸다. 요가를 오래 해온 사람들이 지니는 기운이 몸 전체에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요가 스튜디오 주변에 살고 있는 글을 쓰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며칠 전 낭독회장에서 만난 사람도 거기서 다시 만났다. 스테판과 잉그리트는 그곳의 요가 선생이기도 했다. 부부는 요가를 하다가 만나서 결혼을 했고 ‘샤키’라는 이름의 여덟 살 딸을 두었는데 샤키라는 이름 속에는 평화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군살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세 사람은 그대로 요가원과 하나였다. 어디에 있어도 세 사람이 가족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아맞힐 정도로 서로 닮아 있었다. 샤키는 두 살 때부터 요가 스튜디오에서 자랐고 여덟 살이 된 지금까지 거의 요가 스튜디오에서 지낸다고. 앉아서 편안하게 얘기하라고 남편 스테판이 여러 개의 방석을 나와 통역자 앞에 깔아주었으나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두고 바닥에 앉기가 멋쩍어 벽에 등을 대고 서서 얘기를 시작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이 더 모여들어 마련된 의자가 꽉 차자 새로 온 사람들도 바닥에 앉기 시작했다. 모두들 서로 오래 만나온 듯 스스럼없어 보였다. 요가복을 입은 에이전트도 그들 사이에 앉아서 나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모르겠다. 그곳에서 왜 그렇게 마음이 평화로워졌는지. 나에게서 사라진 것 같은 웃음이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인사하듯이 그들에게 첫인사를 했다. 나는 서울에서 왔는데 내가 사는 동네에도 여기 분위기와 비슷한 요가 스튜디오가 있고 그 요가원에서 요가를 시작한 지 15년이 되었다고… 요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낭독회는 그로부터 세 시간 사십 분 동안 이어졌다. 내가 가진 낭독회 중 가장 길고 편안하고 평화로운 낭독회였다. 한국말을 처음 듣는 사람도 있었다는데도 누구 한 사람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헤어질 때 샤키가 나에게 “어린이를 위해서 쓴 책은 없나요?”라고 물어서 나는 샤키를 안아주며 말했다. “언젠가 쓸게, 너랑 어린이를 위한 책.” 샤키가 수줍게 웃었다. 어떤 약속은 또 그렇게 이루어지기도 하나 보았다. 가장 긴 낭독회를 했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나는 소파에 쓰러지기는커녕 점점 더 맑아지는 정신으로 뉴욕의 거리를 내려다보며 6분 동안 나무 자세를 한 후에 잉그리트와 스테판에게 이메일을 썼다.

“오늘 밤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밤이었어요. 요가 스튜디오에서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요가와 책을 읽는 일이 서로 어울린다는 생각을 처음 했네요. 매우 편안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요가 스튜디오에서 리딩을 해서일까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데 처음 만난 것 같은 서먹함이 없었습니다. 모두들 내 책의 낭독에 귀기울여줘 우리는 오랜 친구 같았습니다. 샤키와 함께 찍은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 오늘 밤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꿈이 실현되길 바랄게요.”

 

내가 소설 쓰는 일 외에 가장 오래 해온 일은 요가인데
그동안 요가에 대한 글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나는 내가 누군가에 의해 발견당한 느낌이다.

 

하루가 지난 다음 날, 나는 잉그리트, 스테판, 그리고 샤키로 되어 있는 답장을 받았다.

“정말 고마워 경숙. 사람들을 초대해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당신과 사랑에 빠진 시간은 큰 기쁨이었어. 요가 스튜디오에서 이런 만남을 시도해본 것은 처음이라 어찌될까? 궁금했어요. 아주 잘되어서 기뻤어요. 우리 셋을 비롯해 모인 사람들은 한국말을 전혀 모르지만 모두들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사람들이 사랑스런 표정을 짓는 걸 보는 게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요가 책을 기다리고 있고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어서 감사합니다. 축복을 빌며 다음 만남을 고대합니다.”

내 요가 책을 기다린다고? 리딩이 끝나고 질문 중 누군가 요가에 대한 글을 쓰지 않겠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났다. 사흘 후에 다시 만난 에이전트도 똑같은 말을 했다. 에이전트는 내가 요가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요가를 해왔다는 것은 그날 듣고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왜 요가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아? 물었다. 요가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약속해, 라면서. 내가 소설 쓰는 일 외에 가장 오래 해온 일은 요가인데 그동안 요가에 대한 글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난 15년 동안 요가는 내게 무엇이었을까? 갑자기 나는 맹렬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요가 스튜디오에서 리딩이 있던 그날 나는 내가 누군가에 의해 발견당한 느낌이다. 에이전트에게 요가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한달쯤 머문 뉴욕을 떠나왔다. 서울로 돌아와 지난 15년 동안 다닌 동네 요가 스튜디오에 다시 나가 요가를 하면서 자주 그 약속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지난 일요일 오후에 머리를 감다가 L이라면 나를 응원해줄 거라는 생각에 문자를 보낸 것이다. L은 짐작대로 그리고 고맙게도 곧 우와… 해주며 아주 잘 어울리고 잘 쓸 듯 해요, 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리고 또 곧 <요가저널>에 글을 쓸 수 있도록 연결을 시켜주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힘과 마음이 보태져 나는 지금 요가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시작이 되었으니 매일 한 편씩 쓰려고 한다. 요가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시간은 나도 모르게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데려다줄 것 같은 예감이다.

 

 

 

신경숙 작가는
스물두 살 되던 해에 중편 ‘겨울우화’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 소설집으로는 <풍금이 있던 자리>, <감자 먹는 사람들>, <딸기밭>, <종소리>, <모르는 여인들>이 있고, 장편으로는 <깊은 슬픔>,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등이 있으며, <외딴방>,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리진>이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출판되었고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 유럽을 비롯해 37개국에 번역 출판되며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호암상과 한국 문학 최초로 맨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다. 요가로 마음을 정돈하고 글로 마음을 전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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