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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마음의 시야
광활한 마음의 시야
  • 최한희 editor
  • 승인 2015.09.16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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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집중하면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진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존재하도록 놔두고, 당신의 고요한 존재 속으로 몸을 이완하자.
명상에 집중하면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진다.

명상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직접적인 명상 수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선불교나 족첸, 아드바이타 베단타에선 명상의 장점을 역설한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당신은 이미 내면의 존재를 환히 발산하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명상하려 노력하면 참 자아와 더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란 것이다. 그러면 명상을 통해서만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여기에 반박하는 이들은 비록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완벽하고 완전할지라도, 그러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선 명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많은 스승들은 두 관점을 모두 포용한다. 비록 당신의 참 자아가 있는 그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사실을 깨닫기 전까진 모든 것이 비밀에 싸여 있다고 말이다. 20세기의 인도 현자인 라마나 마하르시는 세상엔 오직 ‘자아’만이 존재하며, 여타의 사물들은 모두 의식의 장난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관점에 따르자면, 당신은 아무런 수련도 할 필요가 없고, 현재 있는 곳에 머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마하르시는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하르시는 이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제자들의 다양한 요구 사항에 맞는 수련법을 개발했다. 어떤 이는 앉아서 조용히 명상하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기도하거나 만트라를 외우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이미 깨달음의 문턱까지 도달한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겐 몇 마디 말로 직접적인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장 클라인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명상하는 습관을 들이는 대신에 일상 속의 소음 뒤에 가려진 고요함을 받아들이는 법에 익숙해지자. 고요함에 잘 반응하면 내면을 더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다.”단순한 명상은 마음의 상태를 억지로 바꾸어 놓는 것에 불과하다. 그처럼 억지로 만들어 낸 고요함은 명상이 끝나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클라인은 명상을 연구실에 비유했다. 고요함이 당신을 부르면 그 연구실에 들어가 당신의 자아를 탐구하는 것이다. 억지로 하는 명상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란 헛된 기대감만 심어주며, 자신의 자아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만 품게 만든다. 명상을 할 때 당신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이미지는 허구일 뿐이다. 생각과 감정, 이미지, 기억을 조합해서 만들어낸 허구 말이다.

깨달음은 현재진행형이다.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조용히 좌선하는 게 좋다면 그렇게 하자. 하지만 명상에 관심이 전혀 없다면 의무감에 하지 말자. 해야 한다는 마음에 억지로 명상하지 말자. 그런 식으로 명상을 하다 보면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난 명상을 잘 하고 있어.”나 “명상하는 법을 전혀 모르겠어.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을 거야.”처럼 말이다.

결국 이런 생각들로 인해 진정한 명상과 더 멀어질 뿐이다. 진정한 명상은 이런 모든 생각 이면에 자리한 고요함이다. “깨달음은 이미 당신 안에 존재한다. 그저 ‘난 아직 깨닫지 못했어.’라는 생각만 없애면 된다.” 라마나 마하르시의 말이다. 명상하면서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은 자아라는 바다가 일으키는 수많은 물결의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고 생각을 억지로 없앨 필요는 없다.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그리고 고요함에 빠져들자.

hear this
10~15분의 시간을 내서 ‘듣는 수련’을 해보자. 편안히 앉아서 눈을 감자. 가능하다면 정원처럼 자연과 가까운 곳이 좋다. 최소한 자연의 소리가 들려야 한다. 사람들의 목소리나 음악 소리, 라디오, TV의 소음이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이제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 특정한 소리에만 집중하거나, 이 소리 저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자. 카메라 렌즈를 열듯이 의식을 열고 귀가 아니라 온몸을 사용해 소리를 듣자. 계속 이완하며, 놓아버리자.

그리고 소리가 들리도록 놔두자. 만약 의식이 특정한 소리에 집중하려 한다면 의식은 그대로 놔두고 몸을 계속 이완해 나가자. 그러면 다른 감각들도 차차 주의에 들어올 것이다. 의자에 닿은 피부의 촉감, 피부를 스치는 공기의 촉감 같은 것들 말이다. 그저 소리가 들리도록 놔두고, 절대 집중하려 하지 말자. 그러면 진정한 의미에서 소리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사라진다!이 수련을 계속하면 깨달음은 당신이 억지로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고요함 속에서 자연스레 얻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될 거다. 이러한 사실은 정신을 집중해선 절대 알 수 없다. 그저 존재 그대로 존재할 때만 깨달을 수 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존재하도록 놔두고, 당신의 고요한 존재 속으로 몸을 이완하자.

스티븐 보디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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