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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우주의 연결 '나마스떼(Namaste)'
모든 우주의 연결 '나마스떼(Namaste)'
  • 요가저널 코리아
  • 승인 2017.09.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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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떼. 이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비단 요가인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이 말은 인도와 네팔 등에서 쓰이는 인사말로, 만나서 하는 인사이기도 하고 헤어질 때 쓰는 인사이기도 하는 등 그 뜻과 사용이 포괄적이다. 나마스떼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경의를 표한다’로 우리 모두에게 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요가적인 사상이 그 바탕에 존재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은 하늘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신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보다 고차원적인 의식이나 더 큰 힘 등 신성한 어떤 것으로 인지하는 게 좋을 것이다. 고대 요가에서는 분명 요가를 신에게 바치는 헌신이나 제례 등으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현대에 와서는 꼭 ‘신’이란 단어에 갇혀 있을 필요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요가는 종교적으로 배척하지 않고, 개개인의 신념에 따른 ‘신’이나 ‘우주’를 모두 존중하고 배려한다. 요가는 모두가 하나의 ‘신’이나 ‘우주’를 따르고 믿기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하나의 ‘우주’이며 ‘신’이 될 수 있다. 이를 이해하고 나마스떼로 다시 돌아와서 생각해 보자. 나마스떼는 신 또는 우주가 존재하는 당신의 내면에 인사한다는 의미이며, 이 인사는 곧 신과 우주가 존재하는 나 자신을 향한 인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나마스떼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면서 패션 등의 소비재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며 속된 말로 ‘핫’하고 ‘힙’해졌다. 나마스떼의 쓰임이 다양해지며 친숙해지는 것은 좋지만 나마스떼가 가진 깊은 뜻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은 걱정스럽기도 하다.

 

나마스떼는 손동작과 함께 이루어지는데 한자어로 옮기면 이 동작은 ‘합장’이다. 합장은 손바닥을 합한다는 말로, 왼 손바닥과 오른 손바닥을 합하여 가슴 앞에 모음으로써 흩어져 있는 마음을 하나로 집중하는 것이 바로 그 뜻하는 바이다.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을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하나가 된 마음··· 번잡스럽지 않은 고요함이 느껴질 것이다. 그 마음은 거짓 없이 진실하며 고요한 상태가 유지되어 명상이나 아사나에 집중하기 좋은 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시작이 좋으면 과정도 훨씬 좋아지는데, 합장, 나마스떼는 그런 시작의 출발점이 되어준다. 동작으로의 나메스떼는 즉, 나와 너 이것과 저것 등 일체 차별의 마음을 떠나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같은 인도 문화권으로 요가 사상과 뿌리를 같이하는 불가에서의 합장은 부처님을 상징하는 오른손과 중생을 상징하는 왼손이 합쳐짐으로써 부처와 중생이 궁극에 가서는 하나로 일체가 되는 중생성불의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고 한다.

또한 동작으로서의 나마스떼는 앞서 뜻풀이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사하는 상대를 존중하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한 손은 자신을,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의미하여, 두 손을 합치고 모으는 것은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너와 내가 같은 동일한 존재로 존중하겠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작으로의 나마스떼는 두 손을 통해서 마음을 모으고, 나아가 나와 네가 하나의 진리 위에 합쳐진 한 생명이라는 뜻을 담게 되어,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작이 간편하다고 해서 결코 가벼운 인사법은 아닌 것이다.

 

인도 문화권에 나마스떼가 있다면, 우리가 속한 동아시아나 유럽 등 다른 문화권에도 인사나 존경을 표할 때의 동작들이 존재한다.

유럽에서 시작된 것으로는 악수가 있다. 악수의 시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에 생겨났다는 것이 가장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그 시절 유럽에서는 당연히 칼 등의 무기를 지니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본인이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대부분이 오른손잡이기 때문에 왼편에 차고 다니는 칼을 뽑을 오른손이 비어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서로의 오른손을 잡는 악수법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덧붙여서 악수 후에 손을 흔드는 것은 팔 등에 추가적인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므로, 악수의 경우 ‘당신을 믿는다’는 의미가 가장 크게 내포되어 상대방을 믿고 존중하는 인사법으로 나마스떼와 어느 정도 맥이 통한다고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는 절이 있다. 절이라고 하면 흔히들 중국에서 전해진 동작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 나라에서 절이 언제 비롯되었으며 그 원초적인 형태가 어떠했는가를 알려주는 구체적인 문헌 기록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추측하건대 멀리는 청동기 시대, 가까이는 고대 국가의 성립 시기에 어떤 형태로든 절이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행해진 초기의 절은 중국과는 달랐을 것이다. 문헌에 나타난 가장 오래된 절의 형태는 <삼국유사>의 고조선조에 나오는 단군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호랑이와 곰이 같은 굴에 살면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는 대목의 ‘빌다’라는 말과, 여자로 다시 태어난 웅녀가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빌고 원하였다’는 말이 바로 ‘비손’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비손’이란 선 채로 허리를 굽히며 손을 비비거나 꿇어앉아서 머리를 숙이며 손을 비비는 것으로, 신에게 애원하는 동작이라고 볼 수 있다. 사극에서 서낭당 앞에서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읊조리는 배우의 몸짓을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청동기 문화 초기에 단군 신화가 성립되었으리라고 보는 학계의 견해에 따른다면, 단군왕검이라는 지배자 아래에 사회 계층의 문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와 같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행해졌을 초기의 절은 비손의 형태에서 큰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비손’이 나마스떼나 악수와 다른 점이라면 ‘비손’을 행하는 자와 받는 자는 수직적인 관계라는 것이겠지만, ‘비손’ 또한 상대방에 대한 경이로움을 담고 있다는 것은 같다. 이후 부여, 고구려 등 후대로 내려오면서 우리나라의 절도 차차 변화했을 것이다. 그것은 중국과의 접촉이 빈번해지고 외교적 의례가 행해짐에 따라 중국 절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에 우리가 행하고 있는 절은 중국의 유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크게 선절과 앉은절로 나누어진다. 선절은 서 있는 자세에서 하는 절이다. 그 형태는 똑바로 선 자세에서 조용히 고개나 허리를 굽히는 것으로 그 굽히는 정도로 존경의 깊이를 표시한다. 이때 양손은 사람에 따라 다리의 양옆에 자연스럽게 드리우거나 앞으로 모으기도 하나 양손을 모으는 것을 더 정중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앉은절은 앉은 자세로 하는 절로, 대개 정중한 의식에서 행하는 큰절, 평상시 웃어른을 뵐 때 하는 평절, 그리고 약식절이라고 할 수 있는 반절이 있다.

 

우리는 요가를 시작하고 끝낼 때 나마스떼를 나눈다. 이때 나마스떼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나를 존중하는 경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공기처럼 우리에게 녹아드는 단어임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좋지만, 자연스럽다고 하여 그것을 쉽게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나마스떼의 진정한 의미를 인지하면서 진심을 다해 말하고 행한다면 더 깊은 울림이 만들어질 것이며, 그 울림은 상대방에게 잔상이 되어 전달될 것이다. 그렇게 그 울림이 잔상으로 퍼져 나간다면 나 그리고 나로부터 시작된 모든 사람의 우주를 인정하고 인지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모두 연결될 것이다. 나로 인해 이 세계가, 이 우주가 존재하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경이롭지 않은가. 나마스떼.

 

 

여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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