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D. 2019-06-13 09:42 (목)
  • TODAY : 461 명
  • TOTAL : 6,928,588 명
거울 저편
거울 저편
  • 하선아
  • 승인 2016.07.28 1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몰랐던 한 여성이 거울을 통해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길버트
 

난 외모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어머니는 간호사였고,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셨다. 손톱
이나 머리를 꾸미실 줄도 몰랐고, 화장대에 있는 화장품도 하나뿐이었다(크리스마스이브 때
처럼 특별한 날에만 바르는 핑크색 립스틱). 외모를 꾸미는 게 바보 같은 짓이라고 배운 적은
없지만 어머니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낀 게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외모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30살에 끔찍한 이혼을 겪고 중년의 위기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면서 상황이 달라졌
다. 난 우울증에 빠졌다. 그리고 우울증은 내자존감까지 완전히 짓뭉개 버렸다.

여기서 말하는 “자존감”이란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자존감을 말한다. 즉, 난 더 이상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난 내 외모가 비교적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물
론 미스유니버스에 나갈 정도는 아니지만 끔찍하게 못생겼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울증은 나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거울을볼 때면 우울한 기운이 얼굴 전체를 가득 뒤
덮은 것처럼 보였다. 생애 처음으로 외모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서 나보다 예뻐 보이는 여성
들(즉, 모든 여성)을 병적으로 질투하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
웠다. 외모에나 집착하는 그런 여자가 된 것 같아서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난 당시에 막 요가 수련을 시작한 터였다. 즉,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선 외
모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2016. jul 81고 있었다(부처님이 명상에 깊이 빠진 상태에서 ‘이중 턱만 없으면 행복할 텐데...’라고 생각하는 걸 상상해 보자). 나의 이런 모습에 나 자신조차 당황스러웠다. 외모에 집착하느라 명상에 집중할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친구인 버네트에게 도움을 구했다. 버네트는 요가 숙련자였다. 20년간 아슈람에서 살아왔고, 일상이 수련 그 자체였다. 게다가 내가 만난 몇몇 요기니들과 달리 믿음이 갔다. 꼭 우리 어머니 같았다. 둘 다 간호사이고, 믿음직하며, 자신감이 넘치고, 공감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리라. 버네트 역시 어머니처럼 머리를 짧게 깎고, 손톱을 단정히 정리했다.

난 창피함을 무릅쓰고 버네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놨다. 내가 더 이상 안 예뻐 보이고, 다른 여자들을 질투하기 시작했으며, 이 사소한일에 집착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고 말이다. 난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할지 알았다. 아름다운 겉모습은 피상적이고 의미 없는 것에 불과하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선 그런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버네트의 말은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당신에게 뭐가 필요한지 알아요.” 버네트가 말했다. “뭐라고요?” 난 되물었다. “당신은 거울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해요. 매일 거울 앞에 오랜시간 앉아서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까지 얼굴을 바라보세요. 일종의 명상이죠. 그러면 자신이 더 예쁘게 느껴질 거예요. 머리도 자르고, 화장품도 사고, 옷도 새로 구입하세요. 그리고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까지 거울 앞에 앉아 계세요.” 버네트가 말했다.

외모 치료
난 할 말을 잃었다. 가장 요기니답다고 생각했던 버네트가 화장품이나 구입하라는 말을 할 줄이야! 난 반박했다. “하지만 위대한 요기들은 겉모습에 집착하면 나의 진정한 본성을 깨달을 수 없다고 말했잖아요.”

버네트도 반박했다. “당신의 외모를 인정하기 전까진 외모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없어요. 당신은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렇게 분명한 사실조차 보지 못하는데 깨달음을 얻을수 있을까요?”

난 그녀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미용실에도 가고, 예쁜 스웨터도 사고, 번쩍이는 귀걸이도 구입했다. 그렇게 예쁘게 꾸미고 거울 앞에 앉아 명상을 시작했다. 정말 불편했다. 첫 명상은 눈물로 끝마쳤다. 두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명상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계속 명상했다. 그 눈물들은 내 자존감에 큰 문제가 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사람의 얼굴은 영혼의 대변인이다. 즉 사무실 앞에 앉아 손님을 맞이하는 리셉셔니스트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읽을 수 없어도 얼굴은 볼 수 있다. 당시 내 얼굴은 처절한 패배자의 몰골을 하고 있었다. 거울을 보면 단점만 눈에 들어왔다. 수치스럽고, 창피하고, 역겹고, 화가 나고, 질투심이 생겼다. 내가 최근 거울을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당장 명상을 그만두고 싶었다. 흉부 엑스레이를 보면서 내게 암세포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내 친구 한 명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외모에만 집착하는 미국인들의 문화에 질려 버려서 다시는 거울을 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그 맹세를 10년간 지켰다. 용감한 행동이긴 했지만 슬픔이 느껴졌다. 외모에 대한 문제에 집착하기 싫어서 10년간 자신을 방치한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삶의 많은 것들을 놓쳤을 것이다. 나도 그녀처럼 많은 걸놓친 건 아닐까?

그래서 거울 앞에 앉아 내가 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1주일 후, 나 자신에 대한 동정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거울을 통해 보니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동정심을 갖자, 내 친절한 마음에 감복했던지 눈물이 멈췄고, 당당하게 거울을 응시할 수 있
게 됐다. 그제야 내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됐다.

<자세한 내용은 요가저널 2016.07월호를 참고하세요.>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